[北 용천역 폭발 참사] 용천 화상 환자 '사진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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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 참사 현장에서 응급진료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침대에 누워 있는 어린이 환자들의 사진은 부실한 처치를 그대로 드러낸다. 우선 폭발사고시 화상환자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돼야 할 수액이 전혀 공급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어떤 사진에서도 팔뚝에 꽂혀 있어야 할 링거주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소아성형외과 김석화 교수는 "어린이 화상환자는 성인과 달리 화상 부위가 체표면의 30%만 넘어가도 생명이 위급한 중태로 분류된다"며 "이 경우 링거주사를 통해 신속히 수액을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상을 입게 되면 화상 부위를 통해 전해질 등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수액 성분이 대량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사진에 보이는 얼굴이 검게 그을린 자국은 불에 탄 상처가 아니라 폭발시 발생하는 이물질 문신일 가능성이 크다. 김교수는 "폭발시 발생하는 강한 압력으로 연소물질과 유리파편 등 이물질이 얼굴의 피부 속에 박히게 된다"며 "8시간 이내에 이물질 제거 수술을 받지 않으면 평생 흉터가 남게 된다"고 말했다.

손등과 얼굴에 덮은 거즈 조각도 북한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말해준다. 현재 국내 화상환자에겐 대부분 면 재질의 거즈 대신 새살이 나오도록 도와주는 우레탄 폼 재질의 밀봉형 창상 치료제를 사용한다. 이 같은 정황을 고려할 때 화상을 입은 상당수 어린이가 이미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으로 공개된 어린이는 보기와 달리 가벼운 화상환자일 가능성이 크다. 일부 어린이 환자가 찬 커다란 손목시계가 눈에 띈다. 화상환자가 반지나 시계 등 신체에 물건을 부착하고 있다면 이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 부위에 화상을 입었다면 부종이 생기면서 피부가 눌려 괴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산암모늄에 노출=고비를 넘겼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후유증이 우려된다. 평양주재 세계보건기구(WHO) 아이길 소렌슨 대표는 "폭발사고 당시 발생한 질산암모늄 유독가스에 수천명이 노출됐으며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피부와 기관지.폐 등에 치명적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독가스를 흡입하면서 기관지 점막 등 호흡기가 손상돼 산소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이에 따라 호흡곤란과 혼수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소 공급장치나 인공호흡 장비가 부족한 북한의 현실을 감안할 때 호흡기 후유증이 나타나면 가벼운 경우라도 생명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장비는 고가인 데다 부피와 무게가 상당해 현장으로 옮기기 어려우며 이를 다룰 수 있는 숙련된 의료진도 부족한 실정이다. 현실적으로 참사 현장의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항생제의 신속한 공급이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도 화상과 창상 등 상처 부위가 곪으면서 세균감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의약품 명세서 전달=북한은 27일 용천 참사 피해자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 명세서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전달했다.

북측이 제시한 의약품 명세는 광범위 항생제, 뇌대사 활성제, 스테로이드제, 글리세린, 안정제, 이뇨제, 지혈제, 해열진통제, 강심제, 소독약, 알코올, 반창고, 붕대, 체온계, 청진기, 핀센트류, 혈압계 등 모두 64종에 이른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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