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열등감의 노예 같은 ‘한국인 부모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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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 16면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등의 배경음악을 만든 미국의 랜디 뉴먼이 최근 ‘한국인 부모들(Korean Parents)’이란 노래를 발표했다 한다. ‘한국 부모는 자녀를 죽어라 공부시킨다’는 가사 때문에 한국인 비하란 논란도 있지만 엉망진창인 미국 교육에 대한 자조도 있다. 한국 부모들의 유별난 교육열은 외국에서도 유명하다. 자식이 잘되면 장한 어머니상을 받고, 못되면 모든 죄를 부모가 덮어쓰는 특이한 나라이긴 하다.

문제는 무엇이 ‘잘되는 것’이고 ‘못되는 것’이냐 하는 기준이다. 자녀의 적성이나 행복감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일류대학에 가야 한다는 잘못된 통념으로 부모와 자녀 모두 고통스럽다. 자녀의 일류대학 입학을 위해 범죄행위를 불사하는 추악한 부모도 많다. 시험 답안이나 입학원서용 자기소개서·에세이 등을 돈 주고 산다든지, 수억원을 내면 외국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다는 식의 발상으로 사기 치고 조작하려 한다.

어떻게든 대학에 들여보낸 뒤 리포트는 또 과외 선생을 붙여 대신 써 주면 된다는 무책임한 부모들이다. 거기에 자녀들은 집단 커닝을 하며 인터넷에서 리포트를 사는 등의 행위로 화답(?)한다. 얼마 전에는 한국 학생들의 SAT 시험지 유출이 미국에서 크게 문제가 됐다. 그러다 보니 미국 대학의 입학 사정관들 사이에서 한국 학생의 입학 서류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유학생 전체가 매도당하기도 한다.

부모든 자녀든, 이런 식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양심을 저버리고 범죄행위도 불사하는 태도는 죄의식을 느끼는 ‘초자아(Super-ego)’가 건강하게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자아의 견제 없이 이기적인 본능인 ‘이드(Id)’의 노예가 된 인간은 열등감이란 콤플렉스에 먹혀 버린 괴물 같은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정신분석가인 에릭슨은 초등학교 시절 공부나 운동 등과 관련해 지나치게 열등감에 빠지면 자아정체성의 형성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나이 든 후에도 신경증이나 성격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고 했다. 자녀의 일류대학 입학을 위해 양심을 던져 버리는 부모들이나, 그 때문에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자녀들이나, 열등감의 노예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은 수십 년간 세계 최고의 경쟁사회에서 살다 보니 생긴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새로 교체된 정권은 지금보다 더한 경쟁을 지향하겠다니, 가뜩이나 간판 따기 급급한 한국사회가 더 병들고 더러워질까 두렵다. 열등감과 자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남에게 잘난 척하고 남을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가족 이기주의에 빠져 버린 사회가 바로 만인이 다 만인의 적인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조기교육이란 미명으로 억지로 과외공부 받느라 정신의 병이 드는 상류층 아이들이나, 방과후 교육과 입학정보에서 소외돼 좌절감에 빠져 엇나가는 빈곤층 아이들이나 모두 도덕심 함양이나 인성교육에는 관심이 없는 부모와 사회의 희생제물이 아닐 수 없다. 모두가 다 상류 1%만 되길 바라는 사회보다는 나머지 99% 모두가 개성에 충실하고 행복할 수 있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는 없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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