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미국 대선] 가족 마케팅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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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페일린 후보가 3일(현지시간) 공화당 전당대회 에서 막내 아들 트리그를 안고 있다. 올 5월 태어난 트리그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세인트폴 AP=연합뉴스]

17세 된 딸의 임신과 남편의 음주운전 전력 등 가족 문제로 곤경에 처했던 세라 페일린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가족 마케팅’으로 위기 돌파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페일린은 3일 밤 후보 수락 연설 자리에 남편과 임신한 여고생 딸 브리스톨, 지난 4월 태어난 갓난 아들 트리그 등 5명의 자녀에다 브리스톨의 남자친구 레비 존스턴까지 데리고 나왔다. 페일린은 연설 도중 남편과 다섯 자녀를 한 사람씩 소개하면서 이들이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연설이 끝나자 남편을 옆에 세운 뒤 트리그를 안아 드는 모습도 연출했다.

페일린은 “어느 가족이나 완벽한 가족은 없다”며 “나는 평범한 ‘하키 맘(hockey mom)’이고 여러분처럼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만들려고 학부모회에 나가는 엄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부분 미국인 가정에 있게 마련인 문제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전략으로 여성 유권자들의 ‘동류 의식’을 불러일으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CNN방송 등 미 언론은 “페일린이 자칫 치명타가 될 수 있었던 가족 문제를 동질감의 대상으로 변화시켰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페일린은 민주당 조 바이든 부통령 후보의 연설을 압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CNN은 특히 “막내 동생 트리그를 안은 채 엄마의 연설을 듣고 있던 셋째 딸 파이퍼가 손에 침을 묻혀 남동생 트리그의 머리를 넘겨 주는 모습이 유튜브 등에서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이어 “보는 사람의 정치적 입장이 달랐다 해도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모습”이라며 “이날 연설의 주인공은 페일린이 아니라 페일린의 가족이었다”고 평가했다.

매케인 진영의 ‘가족 마케팅’은 4일 매케인의 연설 때 부인 신디가 7명의 자녀와 함께 무대에 등장하면서 계속 이어졌다. 신디는 매케인과 첫 부인 사이의 2남1녀와 자신이 낳은 2남1녀, 방글라데시에서 입양한 피부색이 다른 딸 한명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 소개한 뒤 이들 볼에 차례로 입 맞추는 등 가족애를 과시했다. 신디는 전날 페일린의 가족과 함께 앉아 페일린의 연설을 경청했다.

워싱턴의 의회 소식통은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가족의 가치’를 지키는 정당으로 자처하면서 민주당 후보들의 가족 문제를 공격해 왔다”며 “이번 대선에선 페일린의 가족 문제가 불거지자 ‘페일린도 보통 사람’이란 메시지로 역공하면서 가족들을 총출동시켜 ‘가족의 정당’임을 재부각하는 데 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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