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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규제>1.간섭 많아 눈치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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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증권감독원의 뇌물수수 사건을 계기로 증시규제 문제가 도마위에오르고 있다.특히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입에 맞물려 증시의 전면 개방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상황에서 국내산업의 경쟁력확보를 위해서라도 이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증시의 규제실태를 진단해 이의 해결방안을 3회에 걸쳐소개한다.
[편집자註] 문민정부 출범이후 대부분 민원기관들의 문턱은 크게 낮아졌다.그러나 대표적인 증시의 민원기관인 증감원의 문턱은여전히 높다.그러면서 증감원은 증시행정의 정점에서 증권발행.불공정거래조사등과 관련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른다.이런 증감원도 사실은 재정경제원한테는 고양이 앞의 쥐다.재경원은 증권정책의 굵은 줄기만 잡고 구체적인 집행은 증감원의 몫이 되는게 상식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증감원의 업무 대부분은 재경원의 보고.협의 대상이다.심지어 언론에 뿌리는 보도자료까지 상의해야 하는 판이다.이러니 정부의자본시장 간섭구조 속에 하수기관으로 증감원 역할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시장간섭은 단순한 간섭이 아니다.「반(反)시장적」규제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행해져 온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를테면 주식공급물량 조절 같은게 대표적이다.주가는 시장내부의수요와 공급에 따라 적정수준을 찾아가게끔 돼 있 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선 이것이 용납되지 않는다.적정주가는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판단하고 이 판단에 따라 주식물량이 인위적으로 조정되고 있다. 반시장적 규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증권.투신사들은 자산운용에 심한 제약을 받는 가운데 까다로운 규정에 묶여 영업다운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한마디로 국내증시는 자율성을 잃은채 당국에 의해 「원격조종」되고 있는 이른 바 「리모컨 증시」다.
이런 형편이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증시가 자본주의의 꽃이니 하는 말들이 무색해진다.증시의 주인은 마땅히 투자자와 상장기업,그리고 증권사등 증시참여자여야 하나 알고보면 증권당국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증권당국이 규제에 나서는 사정은 무엇일까.가장 큰 이유는 시장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시장을 믿을 수 없으니 손을 대야 온전히 굴러갈게 아니냐는 게 규제의 논리다.
그러나 규제의 폐해는 크다.무엇보다 각종 부조리와 비리가 자라나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주객이 전도된 상황에선 책임의식과직업정신이 엷어질 수 밖에 없고 이틈을 비집고 들어온 「검은 유혹」이 쉽게 뿌리내리게 마련이다.시장참여자들은 그들 나름대로경쟁력을 키우는 등 본연의 업무는 뒷전으로 미룬채 증권당국에 대한 로비력 강화에 몰두하게 된다.
최근 증감원의 뇌물수수사건은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잠복해 있다가 한꺼번에 곪아 터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행히 증감원 사건을 계기로 증시 전반에 걸쳐 불합리한 요소를 제거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당국도 제도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물량조정 권한을 누구한테 넘기고 하는 식의 「밥그릇」조정에 그치고 정작 시장기능을 제대로 되살리자는 논의는 찾기 힘들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시장에 대한 철학이다.당국이 지금처럼 시장의 자율조정기능을 불신하고 있는한 제도개선은 무의미한 일이며 제2,제3의증감원 사건이 재발될 구조는 여전히 남게 될 것이다.
서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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