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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홀브룩 칼럼

그루지야 사태의 궁극적 해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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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러시아가 그루지야에 입힌 엄청난 손실을 감안할 때 모스크바는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실은 실패했다. 다름 아닌 미하일 사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카슈빌리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친미 정치인이었다. 러시아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 대한 영향력 확보엔 성공했다. 또 그루지야의 허약한 군사력을 손쉽게 무력화했고 서방과의 연대를 뒤흔드는 성과도 거뒀다. 러시아는 지난 3년 내내 사카슈빌리를 제거하려고 애써왔다. 내부 반란을 부추기고 경제봉쇄를 시도하다 마침내 전쟁까지 일으켰다. 그럼에도 사카슈빌리는 살아남았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은 미국의 새 대통령이 맞닥뜨릴 현실이다. 서방세계는 지금 러시아를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고 있다. 러시아 소치에서 열릴 2014년 겨울올림픽을 보이콧하거나 주요 8개국(G8) 회원국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는 옵션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치는 그루지야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방정식은 간단하다. 사카슈빌리가 살아남으면 블라디미르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은 지는 것이다.

두 사람 간의 증오는 2세기에 걸친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 악연과 오버랩된다. 각종 보고에 따르면 푸틴은 파탄 난 국가경제를 경이적으로 성장시키고 세계 최고의 외자유치 기록을 낸 사카슈빌리를 거론하는 것 자체만으로 지게 돼 있다.

모스크바는 무력으로 사카슈빌리를 제거할 타이밍을 이미 놓친 것 같다. 그러나 은밀한 방식으로 없앨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사카슈빌리와 대중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하면서 살펴보니 그에 대한 경호가 좀 더 강화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전임자인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그루지야 대통령은 러시아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암살 시도를 여러 번 모면했다. 모스크바의 가장 큰 희망은 그루지야 경제가 급격히 망가지는 것이다. 통화체제가 마비되고 모스크바가 조종하는 야당지도자의 선동 아래 국민이 사카슈빌리 정권을 무너뜨리는 게 꿈이다. 서방은 이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 그루지야에 충분한 경제·군사 지원을 하는 게 급선무다. 공개적으로 그루지야의 재건을 돕겠다고 선언하면 러시아의 야욕을 꺾는 최선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루지야 외무장관은 철도·교량·항구 등 각종 인프라 재건 비용으로 최소 10억 달러를 상정했다. 인도적 지원과 난민 정착비 및 군사 지원은 빠진 액수다.

궁극적으로는 그루지야와 러시아가 평화 속에 공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 그루지야도 할 일이 있다. 사카슈빌리는 2003년 취임한 뒤 파탄 직전의 나라를 구해냈다. 이제 그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전략적으로 행동할 때가 됐다. 그는 종종 유럽이 충분한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비난해 왔다. 유럽연합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나라의 지도자로선 부적절한 행동이었다. 러시아를 공격한 그의 각종 레토릭 역시 이해할 여지는 있지만, 나라와 자신의 안전에 위험을 자초한 것이었다.

수세기 동안 그루지야는 러시아란 거인을 옆에 두고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러시아가 마음에 안 든다고 멕시코 옆으로 옮겨갈 수는 없다. 결국 사카슈빌리는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 상황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그루지야를 침공했다고 서방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과거 소련에 속했다가 독립한 나라들에 대한 무력사용은 반드시 대가가 따를 것임을 알아야 한다. 특히 러시아의 다음 목표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에서 그렇다. 탈냉전 시대 국제사회의 룰은 분명 변했다. 그러나 러시아만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방향은 아니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으로 서방은 단결했고 러시아는 이를 간과했다. 수주일 안에 그루지야에서 그 결과가 나올 것이다.

리처드 홀브룩 아시아소사이어티 이사장·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

정리=강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