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4월부터 사퇴 결심 … 실세들 만류로 자리 지켜 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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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가 이미 올봄부터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두 차례나 자민당 정권 상층부에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실세들의 만류로 마지못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후쿠다 총리가 처음 사퇴를 결심한 것은 민주당과의 연립정권 시도 무산, 일본은행 총재 공석 사태, 휘발유세 잠정세율 연장 무산 등이 잇따르던 4월 말이었다.

3일 마이니치(每日)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후쿠다 총리는 당시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를 만나 “그만두고 싶다. 이제 해외 출장도 가고 싶지 않다”며 불편한 심정을 전했다. 당시 후쿠다 총리는 4월 말 황금연휴 기간 러시아·영국·독일·프랑스 등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모리 전 총리가 “최소한 러시아는 가는 게 좋겠다”고 설득해 러시아만 방문하고 유럽 3개국 방문은 보류됐다는 것.

모리 전 총리는 이후에도 계속 흔들리는 후쿠다 총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지난달 21일 시즈오카(静岡)의 한 골프장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아베 신조(安倍晋三) 등 전직 총리들과 회동해 ‘후쿠다 체제’의 지지를 결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쿠다 총리는 1일 총리직 사퇴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 개시 2시간 전에 모리 전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 결심을 전했다. 시내 모처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모리 전 총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기다려줘. 서두르지 말고. 지금 총리실로 가겠다. 얘기 좀 하자”고 했지만 후쿠다 총리는 “오지 않아도 된다. 이미 늦었다.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고 답했다.

후쿠다 총리가 사퇴를 결심한 결정적인 원인은 지난달 각료 개각에도 자민당의 인기가 올라가지 않고,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정치적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배를 탄 공명당까지 민주당의 조기 총선거 요구에 동조하면서 연립정권이 흔들린 것도 한 배경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는 “난관을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총리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며 후쿠다 총리를 비판했다. 또 “2세, 3세 (세습)정치인들은 배짱도 근성도 없다”며 아베 전 총리에 이어 두 번 연속 자진 사퇴극이 벌어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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