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레이로 혼혈인 마음 그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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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마이어홀츠가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래피티 작업을 하는 포즈를 취했다.

 지난주 일요일 오후, 서울 홍익대 인근 대안문화공간인 상상마당의 한쪽 벽면은 거대한 그래피티(graffiti) 벽화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행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래피티 예술가 세 명이 스프레이 캔을 들고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흰 벽을 각양각색의 캐릭터와 글자로 채워갔다.

금요일 시작된 작업은 일요일 저녁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마무리됐다. 그래피티 아트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가지고 거리의 벽 등에 각자 개성이 살아있는 캐릭터와 도안화된 문자를 칠하는 것으로, 거리의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힙합문화의 한 부분으로, 유럽과 미국 뉴욕 등지에서 활발하다.

이날 작업한 사람은 한국인 2인조 ‘제이앤제이 크루’의 유인준(30)·임동주(30)씨와 독일에서 온 특별한 손님, 크리스티안 마이어홀츠(27). 마이어홀츠는 ‘이윤성’이라는 한국이름도 갖고 있는 한국계 혼혈이다. 1970년대 파독 간호사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일 중북부의 브라운슈바이크에서 나고 자란 이윤성이 그래피티의 길로 들어선 건 2001년이다. 정체성의 혼란이 큰 이유였다. “독일인들은 생김새만 보고는 저더러 계속 ‘어디에서 온 관광객이냐’라고 물어봐요. 결국, 저는 그들 사회의 완전한 일원이 될 수 없는 거지요.”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해서 외가 식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말이 서툰 데다 한국식 예의범절도 생소했다. “독일에선 한국인으로, 한국에선 독일인으로 느껴졌어요. 어딜 가든 이방인인 셈이지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많이 던지게 됐어요.”

그러다 주변에서 친숙하게 접하던 그래피티 문화가 눈에 들어왔다. “전철이나 동네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를 보면서 그림과 도안화된 문자로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데 끌렸어요. 언어의 장벽도 존재하지 않고, 누구든 보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정체성 혼란을 반영한 듯, 그가 자주 그리는 캐릭터도 이중성을 나타낸 것들이 많다. 무시무시한 용의 탈을 뒤집어 쓴 온순하고 작은 사람이나 슬픈 표정의 어릿광대가 그 예다.

그는 모기(Mogi)라는 예명을 쓴다. “부드러운 발음이 좋기도 했지만 한국어로 곤충인 모기를 연상하게 한다는 것도 재미있었다”라는 설명이다. 그러다 한국 작가들과 교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무작정 인터넷 검색을 시작, 제이앤제이 크루를 알게 됐고, 공동 작업을 제의했다. 2006년에는 서울 압구정에서, 작년에는 베를린·쾰른 등 독일 여러 도시와 스페인을 작업을 함께 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서울 메이츠(Seoul Mates)’라고 이름 붙였다. 서울과 소울 메이트를 합친 이름이다. 올해는 8월부터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작업해왔다. 지난 일요일 홍대에서의 작업도 그 일환이다.

올해의 ‘서울 메이츠’가 더 특별한 이유는 독일 제작 다큐멘터리에 담긴다는 점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독일과 프랑스의 예술채널 아르테(Arte)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자 안드레아스 멜커(25)는 “‘모기’는 독일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도 열고 유럽 각지의 워크숍에 초청되는 등 꽤 알려진 작가”라며 “‘모기’의 그래피티 작업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와 서구문화의 충돌과 융합을 살펴보는 게 제작 취지”라고 설명했다.

“서울엔 깨끗하지만 재미없는 장소도 많은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한국에 계속 와서 그래피티 특유의 자유로움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이윤성도, 마이어홀츠도 아닌 그래피티 예술가 ‘모기’의 말이다.

글·사진=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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