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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강이 휘돌아 「하회(河回)」라 한다.
넉넉한 낙동강 물이 마을을 에워싸듯 흐르고 있다.물살이 빠르다.우거진 솔숲과 깎아지른 검정 바위벽 사이를 훑으며 놀랄만큼빨리 간다.저 물살을 타면 하구(河口)의 김해(金海)도 차라리지척(咫尺)일 것이다.
가야시대 사람들은 이 낙동강을 타고 김해로 이르러 물밀처럼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홍도(金弘道)가 그림에 찍은 도서(圖署)가운데는 12㎝ 사방이나 되는 큰 것이 있었다.크기도 크거니와 이 도장의 인문(印文)이 더욱 흥미롭다고 한 것은 이자벨이었다.지난번 서울에 와서 단원 김홍도를 추적하다 발견한 도장 사진이다 .
「성(姓)김씨,명(名)홍도,자(字)사능(士能),호(號)단구(丹邱),고가야현인야(古伽倻縣人也)」.
도장에 새겨진 글이다.
고 가야현인,「옛 가야현 사람」김홍도.본관이 김해이므로 옛 가야현 사람이라 한 것이다.조선조때의 지리 책자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의 옛이름을 가락(駕洛).가야(伽倻).금관(金官).임해(臨海).금주(金州)등으로 적고 있다.
그러나 본관이 김해라는 사실만으로 「옛 가야현 사람」이라고 도장에까지 못박았을 것같지는 않다.김해와 깊은 연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옛 가야에 남다른 애착과 긍지를 갖고 있었던 인물임을 짚게 되는 것이다.
김해로 이르는 낙동강의 물살처럼 단원의 붓발은 엄청나게 빠르고 힘찼다 한다.화재로 타버리고 남아있지 않으나 창덕궁의 커다란 벽을 가득히 메웠었다는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는 믿기지않을만큼 빨리 그려냈다고 전해진다.가위 당대의 신필(神筆)이다.능히 정조(正祖)의 총애를 받을만 하지 않았겠는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齋寫樂)도 경탄할 만큼의 속필(速筆)이었다. 불과 열달 사이에 1백40여점의 그림을 잇따라 그려냈다.
이틀에 한점꼴.이 속도에 놀라지 않는 이가 없다.
유럽 미술계가 벨라스케스.렘브란트와 나란히 「세계의 삼대(三大) 초상화가」로 손꼽는 걸작 인물도를 이틀에 한점의 속도로 휘둘러 그려낸 것이다.
「단원.샤라쿠 동일인설」을 이자벨이 주장하는 또 하나의 근거다. 하회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서여사에게 우변호사와의 일을 실토하려 했으나 기회가 없었다.작은아들 김사장이 어머니를 호위하듯 바로 뒤에 붙어다녔기 때문이다.
고옥이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여기에도 석류꽃이 눈에 시도록 선연하게 피어있다.야들야들하고붉은 꽃잎이 흡사 여인의 은밀한 곳처럼 수줍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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