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인들의 자취를 따라 걷다
‘성 북쪽의 마을’이라는 이름답게 성북동은 북악산 줄기를 감아 도는 서울성곽 바깥쪽에 자리하고 있다. 성북동은 그저 동네 이름이기만 한 곳이 아니다. 시인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은 아스라한 옛것의 공기로 가득 찬 마을이다. 골목 하나까지도 특별한 곳이다.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근현대의 문화유적이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성북동과 삼청동을 잇는 약 4km의 성북동 길에는 1930년대 이후의 옛 문인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택들 한가운데 서면 그저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가 되는 듯, 소설이 되는 듯, 그런 곳이다.
■ 만해 한용운의 한과 넋이 깃든 집, 심우장
성북동 옛집 순례는 만해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에서 시작하면 좋다. 옛 성곽 아랫마을에 자리한 심우장은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5번 출구로 나와 성북초등학교 방향으로 걸어가거나, 6번 출구에서 1111번, 2112번 초록버스를 타고 종점인 명수학교에서 내리면 된다. 종점에서 길을 되돌아 조금만 내려오면 왼쪽에 심우장길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길을 100여 미터 오르다 보면 까만 문패에 흰 글씨로 새겨진 세 글자 ‘심우장(尋牛莊)’과 마주하게 된다. 심우장, 이 세 글자를 무심히 넘기지 못하는 이유는 담겨진 속뜻 때문이다.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
가파른 골목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철문, 그리고 심우장.
심우장은 작은 방 두개, 부엌, 좁은 마루와 광으로 이루어진 단정한 한옥이다. 그가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와 옥중 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마당 한쪽에는 소나무와 은행나무, 향나무 등이 있는데 이 중 만해가 손수 심었다는 향나무에서는 옛 주인의 절개와 고고함이 묻어난다. 집필활동을 하며 말년을 보내던 그는 아쉽게도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 집에서 눈을 감았다.
은행나무 뒤로 오롯하게 자리한 심우장.
심우장 골목을 나와 50m쯤 더 내려가다 보면, 식사 시간마다 분주해지는 식당이 있다. 성북동의 유명한 맛집으로 소문난 금왕돈가스. 그 오른쪽으로는 덕수교회가 이어진다. 여름 저녁의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데이트 코스로 추천할 만한 곳이다.
그런데 덕수교회가 끝이 아니다. 여기서 발길을 돌린다면 이재준가(家)를 볼 수 없다. 이재준가는 덕수교회 안쪽으로 나지막한 오름길을 따라 들어서야 만날 수 있다. 높은 담장을 뒤덮은 넝쿨이 예스러운 풍치를 더하며 옛 저택으로의 길을 안내한다.
이재준가는 원래 마포에서 젓갈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상의 별장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소설가 이재준이 사들여 여생을 보냈던 곳이라 ‘이재준가’라 불린다. 서울시 민속자료 11호로도 지정된 이 집은 19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조선 말기의 한옥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85년 덕수교회에서 인수해 현재는 교회의 영적 수련장이자 대외적인 행사장으로 쓰인다. 때문에 평소 문은 굳게 잠겨있다.
굳게 잠긴 이재준가
이재준가의 맞은편으로는 이태준가(家)가 있다. 금왕돈가스를 바라보며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수연산방(壽硯山房)이 그곳. 콩돌을 박은 화장담과 담 너머로 짙은 초록빛의 나뭇가지가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화장담 가운데의 일각대문을 들어서니 고풍스런 한옥과 흙마당, 아담하지만 주인의 세심한 손길이 엿보이는 정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태준가(수연산방)
수연산방의 옛 정취를 찾아 온 사람들.
전통차와 함께 옛 선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수연산방은 오전 12시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명절에는 쉰다. (02-764-1736)
■ 한국 제일의 고서화 미술관, 간송미술관
수연산방에서 차 한 잔에 숨을 고르고, 마지막으로 이른 곳은 간송미술관. 수연산방에서 나와 성북동길을 따라 십여 분쯤 내려가다 보면 왼쪽으로 간송미술관 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30m 들어가면 성북초등학교 정문 바로 옆에 간송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평소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간송미술관. 마치 비밀의 화원 같다.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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