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디자인이살면경쟁력도산다>上.상품가치 높이는 마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세계 초일류기업들이 제품차별화의 대안을 디자인에서 찾고 있다.가격이나 품질.기술격차가 점차 좁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세계 12위권의 무역대국 한국은 부끄러울 정도로 이 분야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선진국과 선진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찾아나선 디자인의 세계를 현지취재를 통해 조망하고,우리의 현실과 문제점.대응방안등을 세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註] 미국과학재단은 지난달 산하기관인 국립기상연구소가발주한 슈퍼컴퓨터 기종으로 일본NEC의 「SX-4」를 구매키로결정했다.이 슈퍼컴은 금액은 1천3백만(약 1백4억원)~3천5백만달러(약 2백80억원)에 불과하지만 미 정부기관으로부터 「컴퓨터의 꽃」인 슈퍼컴을 외국기업이 수주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국제관련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NEC가 크레이 리서치사등 세계 최강인 미국업계를 따돌리는데 성공한 비결은 바로 「디자인」이었다.
NEC의 기술자 출신 세키모토 다다히로(關本忠弘)회장은 3년전 사장시절 『새로 만드는 슈퍼컴은 세계를 겨냥해야 한다』며 『모든 총괄을 디자인쪽에서 맡으라』는 지시를 전격적으로 내렸다. 그동안 NEC를 지배해온 기술파트에선 크게 반발했으나 세키모토사장은 이를 묵살했고 아예 별도회사로 독립시켜 NEC디자인이 주축이 돼 탄생시킨 것이 SX-4모델이다.
이 슈퍼컴은 대형 박스를 줄줄이 늘어놓은 기존 제품들과는 달리 방사선형(型)별모양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심장부인 중앙처리.주기억장치는 마름모꼴안에 몰아넣어 회로를 최대한 단축시켜 슈퍼컴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전기저항과 열발생을 줄 였다.
주변부는 공기를 최대한 흡수토록 인체의 팔.다리 모양으로 벌려 냉각 효율을 극대화시켰다.
이 슈퍼컴은 최근 일본의 굿 디자인 대상을 차지했다.
『컴퓨터는 「디자인과 무관한 상품」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고 기술과 멋을 조화시켰다』고 일본산업디자인진흥회의 우메쓰 다케유키(梅津隆之)담당과장은 수상이유를 설명했다.
굿 디자인의 특별상은 엉뚱하게도(?)나가사키(長崎)소재 혹쇼사가 만든 「공중화장실」에 돌아갔다.화려한 외관과 함께 사람이들어오면 조명이 자동적으로 켜지고,볼일을 본 다음엔 자동환풍이되도록 해 『화장실(특히 공중변소)은 더럽고 볼일만 보면 되는곳』이라는 발상에서 시민들이 빠져나오도록 하는 효과까지 거두었다. 개당 약 3천만원의 고가 수상이유를 설명했다.
굿 디자인의 특별상은 엉뚱하게도(?)나가사키(長崎)소재 혹쇼사가 만든 「공중화장실」에 돌아갔다.
화려한 외관과 함께 사람이 들어오면 조명이 자동적으로 켜지고,볼일을 본 다음엔 자동환풍이 되도록 해 『화장실(특히 공중변소)은 더럽고 볼일만 보면 되는 곳』이라는 발상에서 시민들이 빠져나오도록 하는 효과까지 거두었다.
개당 약 3천만원의 고가(高價)임에도 지방정부들이 『시민에게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앞다퉈 사가는 바람에 이 회사는무명 콘크리트 제조업체에서 일약 첨단디자인업체로 부상했고 종업원을 10명에서 50명으로 늘렸다.
60년대 세계 최초로 완전 트랜지스터 전자계산기를 개발해냈던일본 샤프사는 80년대 후발주자들이 대거 등장하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계산기사업에서 손떼느냐 계속 잔류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됐다.이 위기를 넘기게 된 것은 뚜껑 을 밀고당길 수 있게 한(슬라이딩 방식)「스파키」모델.아이디어 하나로 값을10배나 올린 개당 40달러나 받을 수 있었다.
미국 산업계를 시찰하고 돌아온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하네다공항에 내리자마자 『이제부터는 디자인』이라고 선언한 것이 1953년이었다.근 50년 전의 일이다.일본은 이미 73년,89년을 「디자인의 해」로 선정해 세계디자인대 회와 디자인박람회까지 개최했다.
일본은 산업디자인 전문회사만도 3천개에 이른다.우리나라의 68개(96년5월 현재)에 비하면 40배가 넘는 규모다.매년 2만여명의 디자인 전공 대학생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최근엔 불황극복 작전으로 「색깔.디자인을 바꿔 신제품처럼 대 접받는 제품」개발붐이 일고 있다.선진국에선 이미 「공정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모든 기술적 개발이 끝난 제품을 디자이너에게 던져주는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개발 초기단계부터 디자이너들이 기술자들과팀을 이룬다.모토로라.브라운.블랙 앤드 데커 등이 대표적이다.
「KF40」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독일 브라운사의 자동커피메이커 모델이다.
커피포트 유리에 플라스틱 손잡이를 볼트.너트가 아닌 실리콘 접착제로 부착해 조립.생산과정을 줄였을 뿐 아니라 곡선으로 디자인해 잡기 편하고 멋도 살린 것이 승부 포인트.제품개발때는 디자이너가 반드시 개발팀에 참여한다.여기에서 「실 용적」인 독일제품에 멋을 가미한 이미지가 창조되고 있다.덴마크 오디오전문업체인 뱅 앤드 올슨은 필립스가 지분 25%를 갖고 있다.필립스로부터 부품을 납품받아 오디오를 제작하는데 완제품도 생산하는필립스 것보다 40~50%는 더 비싸 게 팔린다.모두 디자인의마술이자 매력이다.
포드사는 T모델을 30년간 고집했다가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친경쟁사 GM에 역전당했다.이후 포드는 유체역학을 응용해 곡선으로 디자인한 차를 생산해 다시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경영도 흑자로 반전시켰다.자동차는 성능만 좋으면 된다는 생 각을 한단계 높인 결과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첨단디자인 회사인 아이데오.비행기 날개를 칸막이로 쓰고 책상 배열도 제멋대로며,모든 가구는 바퀴를 달아이동이 쉽게 하는 등 사무실 배치부터 「디자인」적이다.
닛산이 미국에 세운 디자인센터인 닛산 디자인 인터내셔널에는 복장.업무등에 관한 규칙이 없다.각 스튜디오는 번호가 아닌 색깔로 구분해놓았다.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거나 업무시간에 아르바이트로 자동차외의 다른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도 용 납된다.「창의」는 「자극」에서 온다는 생각인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학교역사상 처음으로 산업디자인에 대한 실증사례 연구를 91년부터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있다.이대학원의 헤이즈교수는 『15년전 기업들은 가격으로 경쟁했고 오늘날은 품질경쟁이 치열한데 미래의 승부처는 디자 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영국은 82년 이후 총리가 직접 산업디자인진흥회의를 주재하고있다. 디자인박물관.국립디자인학교도 있으며 초등학교때부터 디자인교육 과정을 개설해놓았다.
선진국만이 아니다.
대만은 89년 「디자인의 세계화」를 선언한 이후 자국 기업들을 국내외 디자이너들과 연결해주고 개발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88년 리콴유(李光耀)총리가 디자인 지향국가를 선언했다. 중학교때부터 디자인교육을 실시중이다.
디자인이 정부차원에서도 핵심적인 산업정책이 되고 있는 것이다. 볼펜은 디자인에 따라 12센트짜리부터 1백달러짜리까지 있고전자시계는 똑같은 성능인데도 10달러에서 1백달러까지 다양하다.임금이 개발도상국보다 훨씬 높은 독일이 봉제품에서,이탈리아가신발에서 세계수출 1위를 달리는 바탕에는 바로 이같은 디자인의마술이 숨어있다.
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에 따르면 한국의 디자인수준은 이탈리아.일본.미국등 선진국들의 40~50%에 불과하며 대만.싱가포르등 동남아 경쟁국가들과 비교할 때도 70~80%정도다.
이때문에 국산품은 제값을 못받고 어떤 것은 덤핑수준으로까지 매도당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디자인 자체개발비중은 20%정도.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50%) 방식과 해외도입(9%)이 60%를 차지하며 특히 모방(21%)의 비중이 높아 다가오는 디자인라운드(DR)의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남의 것을 베낀 제품은 높은 관세를 물리거나 아예 수출을 금지하자는 것이 디자인라운드다.디자인을 제품의 「외관꾸미기」정도로 생각하는 한 이 복병에 걸려 수출 한국의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기술 못지않은 산업경쟁력의 지름 길이 디자인이라는 의식전환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