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하는 지점들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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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달 은평 뉴타운에 문을 연 기업은행의 ‘IBK월드’ 1호점. 칸막이를 없애고 커피 기계도 갖췄다. 오렌지색의 화사한 분위기는 여느 카페를 연상시킨다. 딱딱한 사무공간에서 ‘주민 사랑방’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게 이 점포의 목표다. [양영석 인턴기자]

 “여기, 은행 맞죠?” 8월 29일 기업은행 은평 뉴타운지점. 안으로 들어서려던 한 50대 여성이 멈칫하더니 직원에게 확인하듯 묻는다. 도무지 은행 같지 않아서다. 이곳은 기업은행의 신개념 점포인 ‘IBK월드’ 1호점. 오렌지색을 주조로 써 분위기가 화사하다. 165㎡(약 50평) 규모의 미니 점포지만 손님과 직원의 공간을 가르는 칸막이가 없어 탁 트인 느낌이다. 한쪽에는 에스프레소 커피 기계도 있다. 카페나 공항 라운지를 연상시킨다. 오숙희 지점장은 “주민들이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장소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은행 창구가 또 한 차례 변신하고 있다. 은행들은 한때 소액 입출금을 하러 오는 단순 거래 고객을 온라인뱅킹과 자동화기기로 내몰았다. 이를 위해 창구 앞 대기용 좌석을 없애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고객 친화형 점포’를 열며 오프라인 고객 늘리기에 나서고 있다. 은행 창구를 찾는 고객이 급격히 줄며 부작용이 빚어지자 들고 나온 처방이다.

◆온라인만으론 한계=은평 뉴타운지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텔러 타워(teller tower)다. 한마디로 자동화기기의 효율성과 창구의 고객 접근성을 접목한 시스템이다. 고객들은 CD기를 쓰듯 스스로 거래를 하고 현금도 수납한다. 이때 맞은편 직원용 모니터에는 고객의 정보가 표시된다. 창구 직원은 고객이 흥미를 느낄 만한 신상품을 찾아 권유한다. 고객용 모니터에도 해당 상품의 자료가 뜬다. 기업은행 김현옥 채널기획부 차장은 “창구 직원은 상품 판매에만 집중할 수 있다”며 “얼굴을 마주보며 맞춤 상품을 권유하기 때문에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입출금 거래 고객 10명 중 8명은 은행 창구를 찾지 않았다. 대신 자동화기기나 온라인뱅킹을 이용했다. 이는 부작용도 몰고 왔다. 신상품이나 펀드·보험을 소개하고 팔 기회도 함께 준 것이다.

기업은행 허재영 과장은 “은행들이 온라인만으로는 돈을 벌기 힘들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온라인뱅킹의 급증이 주거래은행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를 떨어뜨린 것으로 보고 있다.

◆창구 경쟁력 높여라=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은 얼마 전 “내점 고객 감소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고객 이탈을 최소화하고 영업점의 마케팅 활성화를 위한 제도와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오후에 손님이 몰린다는 점에 착안해 오전에 지점에 들러 예금 상품에 가입하면 금리를 더 얹어주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또 은행권 노사는 개점 시간을 오전 9시30분에서 9시로 당기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은행 창구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증권사보다 문을 늦게 열어서는 경쟁에 뒤진다”고 설명했다.

은행 창구는 외환위기 이후 큰 변화를 겪었다. 1999년 신한은행은 처음으로 로 카운터(low counter)를 도입했다. 창구의 높이를 낮추고 복잡한 업무를 한자리에 앉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무렵부터 뒤쪽에서 도장만 찍던 간부들이 전진배치됐다. 은행들은 또 ‘돈 안 되는’ 손님이 창구로 몰리지 않도록 지점 입구에 자동화기기를 대량 배치했다. 대신 상담 창구와 VIP룸을 늘렸다.

기존 지점과 뭐가 다른가

- 타워텔러(가운데 동그란 데스크 두 개):자동화기기와 입출금 창구를 결합. 고객이 직접 거래를 하는 사이 직원이 고객 정보를 검색해 맞춤형 신상품을 소개하고 판매. 모든 과정은 직원용과 고객용 모니터를 통해 이뤄짐.

- 창구 뒤 간부들 책상은 사라짐. 기존 호출번호 표시판 대신 뒤편 대형 LCD TV에 순번 표시.

- 휴식 공간(아래 왼쪽부터 세 번째 기둥과 네 번째 기둥 사이):에스프레소 기계와 소파를 놓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

- PB 상담실(대여금고 왼쪽 방):프라이버시 보호 위해 독립 공간 설치. 구석에 위치한 지점장실(상담 부스 오른쪽 방)보다 넓고 쾌적.

- 지점장 포함 전체 근무 직원 7명. 수납 직원은 없음. 자동화로 효율 높이고 고객 접점은 늘린 게 특징.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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