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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부작용 낳은 서민정책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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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민주노동당이 국회 진출을 계기로 민생법률안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에 눈길이 간다. 특히 민노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이 졸속 입법한 것으로 지적된 일부 경제법을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민주당이 마련한 법률의 취지는 서민생활 안정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서민생활을 위협하는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다. 어느 쪽이 진정한 국민의 정당인가. 민노당의 대 국회 전략의 핵심은 서민생활 보호를 위한 정책정당으로서 깃발을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

민노당이 개정을 촉구하고 있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경우 2년 전 제정될 당시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영세상인들과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 따라 의원입법 형태로 이뤄진 이 법이 시행되면서 건물주들이 보증금 또는 월세 인상을 부추기는 회오리 바람이 불고 임차인에게 법의 보호대상 임대보증금 상한선을 초과하는 임대료를 요구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영세상인들이 보호받는 측면 못지않게 보호받지 못하는 새로운 사각지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나라당.민주당은 외환위기 이후 대형 상가들이 부도로 쓰러지면서 피해를 본 영세상가들이 연이어 당하는 고통을 직접 해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책임 추궁이 두려웠던 탓일까.

1990년 국회가 전세 입주자를 보호한다면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고쳐 주택 임대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자 오히려 전셋값은 두배로 뛰었다. 그래서 한때 집 없는 서민들 생활이 더욱 어려워진 전세금 파동이 일어났다. 이로부터 11년 후인 2001년에는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다시 국회가 관련법을 고쳤다.

우리는 국회의 입법활동을 통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유권자나 서민을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시장에서 왜곡되고 서민생활을 어렵게 만든 현실을 보게 된다. 이에 대한 학습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게 우리의 불행이다.

서민들이 요구하는 생활 관련 대책이나 시민단체 등이 제.개정을 주장하는 각종 경제법은 그것이 몰고올 2차.3차 효과나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 국회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시장경제가 도대체 어떤 모습인지를 눈여겨보는 성실성의 원칙이 필요한 부분이다. 91년 노벨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스의 경고는 이러한 것이다. 경제적 약자를 위한 대책이 오히려 약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는지를 정치가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오진(誤診)에 따른 보상비용이 높아질수록 가난한 사람한테 가야 할 의료 혜택이 줄어드는 시장의 흐름을 국회의원들이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분양가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새 국회로까지 번질 움직임이다. 여야 정당들의 대책도 가지각색이다. 건설업체들의 폭리에 화가 나지 않는 국민이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강제로 공개토록 한다면 원가산정의 객관성 보장과 분양가 통제를 둘러싼 정부의 규제가 되살아나고 보이지 않는 비리가 싹틀 것이다. 아파트 품질이 떨어지고 소비자 불만도 커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건설업자들의 폭리는 별도의 대책으로 풀 수 있다. 정부가 지금 유지하고 있는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라는 대원칙은 값비싼 대가를 지급하고 얻은 것이다. 시장의 위력을 경험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모든 정당이 함부로 서민을 팔지 말았으면 좋겠다. 생활정당.민생정당.경제정당이라는 이름으로 설익은 대책을 내놓지 말기를 바란다. 시장의 허상만 보고 문제를 지적하고 대책을 내놓으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책임에 묻히게 된다. 그 결과가 다음 선거로 연결돼야 당연하다.

최철주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