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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탄생뒷얘기>4.조형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 배역,당신이 한번 맡아 봐.』 93년 MBC 주말연속극『엄마의 바다』의 연출을 맡았던 박철PD(현 이사)는 단골 악역 탤런트 조형기(39)에게 캐스팅 사실을 통보하면서 한마디 던졌다. 「키 크고 험상궂은 얼굴=악역」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이번에도 「깡패두목」아니면 「여자 등쳐먹는 기둥서방」정도겠지 생각하던 조형기는 대본을 받아들고 놀랐다.
주인공 영서(고현정 분)의 이모부역으로 하늘 같은 아내(권기선)에게 쩔쩔매는 공처가 남편이 주어진 배역이었기 때문이다.자신이 맡아온 배역중 가장 선하고 착한 남자역이었다.
『비중있는 배역을 맡으면 그 드라마가 인기가 없었고 인기있는드라마에 캐스팅됐을 땐 극중 배역이 너무 미미했어요.한마디로 별로 운좋은 연기자는 아니었던가 봅니다.』 82년 이영범.정성모등과 MBC 공채동기로 탤런트 생활을 시작한 때부터 맡았던 배역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스쳤다.
MBC주말연속극 『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에서 그가 맡은폭력남편.깡패.사기꾼 역이 그의 단골 배역이었다.악역으로 연기력은 인정받아도 시청자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180㎝의 키에 1백㎏에 육박하는 거구인 그는 누가 봐도 악역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보였다.
연기 생활 10년동안 영화도 많이 찍어봤고 나름대로 변신도 시도해 봤다.그러나 워낙 악역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시청자들은 「조형기=악역배우」로만 기억해줬다.
그러던 그에게 순하디 순한 남편역을 박PD가 덜컥 맡긴 것.
실제로 그건 다소의 모험이었다.
판에 박인 캐릭터는 무미건조해 보일수도 있지만 동시에 안정감을 준다.그래서 갑자기 상반된 인물로 나오면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하게 된다.
부드럽고 코믹한 배역이 맡겨지자 조형기는 시청자들에게 금세 딴 사람으로 비쳤다.멀대같이 큰 키에 험상궂은 얼굴을 한 남편이 자그마한 몸집의 아내에게 꼼짝못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오히려 더 잘 먹혀든 것.
이때부터 그의 끼는 유감없이 발휘됐다.드라마에서 인정받은 코믹한 이미지로 94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해 선보인 「좌우지 장지지…」는 그의 확실한 출세작.
고등학교 때부터 소리나는 대로 부르던 팝송 『Top of The World』를 방송에서 15초간 「신토불이 창법」으로 선보인게 계기였다.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탤런트,즉 「원조 탤개맨」은 이렇게 탄생됐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어린아이부터 어른에게까지 폭발적인 인기와 유행을 몰고 왔다.
글=장세정.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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