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국내 은행 투자로 '떼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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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외국계 금융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국내 금융회사 지분을 팔아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한미은행 2대 주주인 영국계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은 지난 23일 한미은행을 인수할 씨티그룹에 보유지분 9.76%(1982만주)를 모두 넘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매각 대금은 주당 1만5500원씩 모두 3000억원에 이른다.

스탠더드 차터드는 지난해 8월 약 1800억원을 들여 삼성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주당 9137원에 매입했었다. 7개월여 만에 1200억원 이상 번 셈이다.

독일계 보험사인 알리안츠는 지난달 증시에서 하나은행 지분 2.46%(489만주)를 주당 2만4500원에 매각했다. 2000년 3월 주당 8900원에 산 지분 8.16%(1420만주)의 일부다. 알리안츠는 매각대금 1200억원으로 매입 당시 투자액(1263억원)의 대부분을 회수했다.

26일 종가(2만7400원)를 기준으로 2500여억원에 달하는 나머지 지분 5.7%는 고스란히 차익으로 남게 됐다. 금융권에선 외환위기 이후 한국 투자에서 연이어 쓴맛을 본 알리안츠가 하나은행 지분 투자로 그동안의 손실을 모두 만회하고도 남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도 2000년 산업은행과 합작해 설립한 KDB 론스타 지분 절반을 지난 1월 국내투자자에게 50억원에 넘겨 15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3년간 받은 10여억원의 배당금은 별도다.

국내 금융사 지분이 '황금알'이 되면서 최근 매물로 나온 금융사 입찰에 참여하려는 외국계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대한투자증권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국민은행엔 최근 골드먼삭스.JP 모건 등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투자은행들이 잇따라 컨소시엄 구성을 제의했다. 이들은 한투.대투 지분은 물론 국민은행이 전략적 제휴자에게 제공할 계획인 국민은행 지분 8.92%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국내 금융시스템이 안정되면서 외국계들이 경영권 확보보다 자본 차익을 노리는 쪽으로 관심을 쏟고 있다"며 "국부 유출 논란 등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금융회사의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는 노하우를 배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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