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치 타협 실종…문화 충돌 치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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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에서는 민주당을 푸른색, 공화당을 붉은색으로 표시한다. 당나귀가 민주당, 코끼리가 공화당을 상징하는 것처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25일 푸른색은 갈수록 짙어지고, 붉은색도 점점 더 붉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대화와 타협을 하는 게 아니라 문화적 충돌을 벌이는 나라로 가고 있다"는 게 이 신문의 분석이다.

미국인들은 이제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는 곳을 결정하는 경향도 보인다고 한다. 골수 민주당 지지자는 서부의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주나 동북부의 뉴욕.매사추세츠.메인주 아니면 오대호 주변의 위스콘신.미시간.일리노이.미네소타 등으로 옮겨가고, 공화당이 강세인 남부 쪽으로는 공화당 지지자들이 이동해 가는 추세가 보인다는 지적이다. 수십년 이상 이어지던 남부=민주당, 북부=공화당의 등식은 완전히 깨졌다.

미 의회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교차투표(cross voting)였다. 당론과 상관없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반대당의 주장에도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고 이런 완충장치 덕분에 미국 정치는 원활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이 갈수록 격렬해져 교차투표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지적했다. 공화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이 된 제임스 제퍼즈 상원의원은 "중도파들이 차지할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침묵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로널드 레이건 효과다. 공화당 출신 전임 대통령들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리처드 닉슨.제럴드 포드 등은 근본적으로 실용주의적 중도노선을 택했는데 레이건은 보수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공화당과 민주당 구분을 확실하게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출신인 빌 클린턴 대통령도 정책적으로는 중도노선을 택했지만 문화적으로는 1960년대의 진보주의 분위기를 고집했다는 게 이 신문의 평가다.

이와 함께 인터넷을 통한 전자우편과 케이블TV의 발달로 민주당과 공화당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지지자들에게 접근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로 지적된다. 각 정당은 모두의 입맛에 맞는 미지근한 정책이 아니라 대상을 세분화한 맞춤형 정책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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