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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총장처럼 치열하게’ 자격증 7개가 나의 힘

중앙선데이

입력

“반기문 총장처럼 치열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난을 이기고 혼자 외국어도 독파하고 당당하게 유엔 사무총장까지…. 정말 배우고 싶은 분이에요. 그래서 요즘 저의 기도 주제는 ‘게을러지지 말자’예요.”

똑 소리 나게 자신의 꿈을 밝히는 그가 낯설게 느껴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제 2년, 아직 소녀 티가 남아 있는 앳된 얼굴 뒤에 저렇게 깊은 속내가 있다니. 그도 금세 머쓱한 듯 웃음을 짓는다. “아마 중학교 친구들이 이런 말 하는 절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수업도 자주 빠지고 공부와는 완전히 담 쌓은 것처럼 지내던 저였으니까요. 후후.”

2006년 말 삼성SDS에 입사해 만 2년째 컨설팅본부장 비서로 일하고 있는 이유경(20·사진)씨. 본부장의 일정 관리와 전화 응대, 행사 준비 등이 그의 주요 업무다. 처음 3개월 정도는 깜빡깜빡 잘 잊어버리는 성격 탓에 애를 먹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작은 실수 하나로 모든 일이 마비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인 뒤로는 훨씬 안정이 됐다.

올 3월부터는 야간 국립대인 서울산업대(경영학과)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혀 문제가 없지만 5, 6년 후에는 좀 더 전문성을 갖춰야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버지뻘인 본부장의 배려로 8-5제(오전 8시 출근-오후 5시 퇴근) 근무 시간을 보장받은 덕분에 선릉역 부근의 사무실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학교까지 수업시간에 맞춰 갈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퇴근 후엔 영어 학원을 꼬박꼬박 다녔기 때문에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전혀 힘들지 않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이씨이기에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었을 때만 해도 미래가 깜깜했을 뿐이라는 얘기가 믿기지 않는다.

“중학교 3년 성적을 합산해 보니 전체 백분율 60%를 웃돌더라고요. 남들 따라 인문계를 가봤자 ‘어중이 떠중이’가 될 게 뻔해 보였어요. 실업계도 아주 좋은 학교를 가기엔 턱도 없는 성적이었죠. 결국 성덕여상을 지원했는데, 그나마 원래 가려고 했던 인터넷 경영정보학과는 지원자가 몰려 떨어졌어요. 가까스로 디지털 정보학과에 추가 합격했죠.”

이씨에겐 그 쓰디쓴 경험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고 깨달은 그는 입학이 확정되자마자 곧장 컴퓨터 학원으로 향했던 것. 그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씨가 취득한 자격증은 워드 1급, 엑셀 1급, 정보처리 2급, 각종 회계 2급 등 7개나 된다.

특이한 것은 비서 자격증. 고2 때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도전, 3급 자격증을 따뒀다. 영어와 비서이론, 상식 등으로 이뤄진 필기시험은 수험서를 사서 혼자 공부했고, 실기 시험은 엑셀과 워드 자격증이 있어 면제받았다. 이씨는 “덕분에 입사 후 곧장 본부장(전무이사급)님 비서로 발령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의 변신에는 고1 담임선생님의 역할도 컸다. 학기 초 반 학생들에게 “스스로 목표 등수를 정해 중간고사 때 그 등수 안에 들면 1년 동안 주번을 안 시키겠다”는 선생님의 엉뚱한 제안에 이씨는 덜컥 “7등 안에 들어보겠다”고 나섰다. 입학 당시 그의 성적은 34명 중 중간 정도였다.

“아침에 주번 하러 일찍 나오기가 싫었던 데다 이상하게 오기가 발동하더라고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죠. 그랬더니 5월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한 거예요. 선생님과 부모님은 물론 저 자신도 정말 놀랐어요.”
그 후 학교 성적은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뿐 아니라 교내 전산선수반 동아리에 발탁돼 서울시 실업계 고등학교 정보능력경진대회에서 동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졸업고사 성적은 당당하게 8개 취업반 학생들 가운데 1등이었다.

본격적으로 취업시즌이 시작되자 삼성SDS가 오랜만에 실업계 전형을 실시한다며 각 학교에 학생 추천을 의뢰해 왔다. 지원자는 총 50명. 모두 각 학교에서 시험을 거쳐 한 번 추려진 학생들이었다. 성덕여상도 8명을 가면접해 이씨 등 3명만 추천한 것이었다. 1차 서류전형, 2차 직무적성검사 시험을 거쳐 3차 면접과 건강검진까지 마쳤다. 졸업도 하기 전인 2006년 10월, 이씨는 드디어 최종합격자 18명에 포함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해 11월부터 그는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소위 ‘대기업’ 출근 도장을 찍었다.

현재 이씨의 연봉은 상여금을 제외하고 약 2000만원. 그중 매달 100만원씩 어머니께 드린다. 그 돈으로 지난 학기엔 입학금을 포함해 240만원 정도였던 대학 등록금도 냈다. 이씨는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웃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조언한다. “인상이 안 좋으면 괜히 손해보기 쉽잖아요. 그리고 책을 많이 읽으면 좋아요. 자기소개서 쓰거나 면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죠.” 그의 얼굴도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내가 본 이유경-고3 담임 신정식씨
야무진 학생이었다. 무엇보다 활발하고 명랑한 성격이어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사랑을 받았다. 요즘도 학교에 인사 올 때면 마치 친정아버지 찾아온 듯 선생님들을 대해서 기분을 좋게 만든다. 기업들도 기본적인 성적 등의 요구 사항이 있긴 하지만 되도록이면 그런 밝은 성격의 학생들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 일도 열심히 잘하기 때문이다.

김정수 기자·최보윤 인턴기자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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