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 경주 도심통과 백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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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말썽이 일었던 경부고속철도 경주구간 공사에서 정부가 건설교통부의 형산강 노선을 백지화하고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하는 또다른노선을 찾기로 한 것은 일단 개발보다는 천년 고도(古都)경주를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있 다.
정부가 추진해온 대형 국책사업이 문화재 보존우선이란 논리에 밀려 백지화되다시피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문화체육부가 주장하는 건천~화천노선도 아닌 「제3의 노선」을 신설하자는 것.그러나 새 노선이 결정되기까지는 국가차원의 부담도 만만찮다.
새 노선을 결정하는데는 노선선정및 관계부처 협의에 최소한 6개월,측량.지질조사에 1년,선로.구조물등의 설계에 1년반,환경.교통평가에 1년반,용지매수에 2년6개월이 걸리는등 한꺼번에 추진하더라도 최소한 3년이 더 걸리게 돼 그만큼 공사기간이 길어지는 것이 불가피한 실정.
추가 자금부담은 공기(工期)지연에 따른 이자비용 1조8천억원,개통이 연기되는데 따른 운임손실분 2조원에다 지질조사.설계비용.토지평가비용 등을 합하면 어림잡아 4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결국 이같은 손실은 건교부가 문화재 훼손을 감안하지 않고 수익성과 지역개발만 내세운 경주통과안을 내놓은데서 비롯된 셈이다.건교부는 당초 서울~부산간 노선을 선정할 때 경주는 통과하지 않고 대구에서 밀양으로 연결되는 노선을 제1안으 로 올렸었다. 그러나 약1백30만명의 「잠재승객」이 있는 포항~경주~울산벨트를 연결해야 수익성이 있다는 판단 아래 92년6월 경주 형산강을 통과하도록 세부노선을 수정했던 것.
이때부터 종교계.학계.문화계등의 반대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 조정 후에도 고속철도가 결국 경주를 통과하게 됨으로써 문화재훼손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는 셈이다.
종교계와 미술학계 등에서는 정부의 이번 결정이 『국민의 문화의식이 한단계 성숙해진 결과』라고 평가하면서 『더이상 불도저식개발정책에 문화가 희생돼선 안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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