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네 콩티 한 병 2000만원 … 2005 빈티지 와인의 경제학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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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에 2000만원’.

로마네콩티右와 같은 생산자가 소유하고 있는 다른 포도밭의 고급 와인들. [중앙포토]

27일 만난 파리의 한 와인 도매상은 로마네 콩티 2005년산 한 병이 지난주에 1만2500유로(약 2000만원)에 팔렸다며 놀라워했다. 제아무리 로마네 콩티라도 햇술이 이렇게 비싸게 팔리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호평을 받는 2000년산도 현재 절반 가격(6800유로)에 불과하다. 그런데 2005년산은 지난달 처음으로 1만 유로를 돌파한 뒤 불과 한 달 만에 2500유로가 또 올랐다. 그는 “보르도 2005년산도 고급은 벌써 6000유로에 달한다”고 전했다. 파리의 와인 도소매상과 소믈리에를 만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2005년산 프랑스산 와인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봤다.

2005년산의 높은 가격은 우선 그해 완벽했던 날씨에서 출발한다. 2005년은 일년 내내 강수량과 일조량이 고르게 이어졌다. 보르도가 좋으면 부르고뉴가 좋지 않은 등 지역적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이 해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포도 재배에 이상적이었다. 덕분에 와인에 대한 평가도 좋았다. 로버트 파커를 비롯한 유명 평론가와 소믈리에들이 모두 높은 점수를 줬다. 파리의 한 소믈리에는 “와인 출하 시점에 네고시앙과 와인 제조업자들은 좋은 점수를 부탁하곤 하는데 2005년산은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고 전했다. 2005년산 와인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2006년 5월께 달러 대비 유로화가 약세였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프랑스산 와인을 수입하는 런던의 한 도매상은 “고급 와인의 최대 시장인 미국이 유로화 약세로 좋은 와인을 잡기에 좋은 여건이었다”고 밝혔다. 유럽에도 돈이 넘쳤다. 파리의 대형 와인 도·소매상 G사 대표는 “2005년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부동산 거품이 최고에 달했고, 이후 매물이 많이 나오면서 시중에 현금이 많이 풀렸다. 그 돈이 2005년 와인 값을 올려 놨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투자처를 찾던 돈이 2005년산 와인이 완벽하다는 평이 이어지자 와인 쪽으로 몰렸다는 설명이다. 중국과 러시아 등 신흥시장의 활발한 거래도 한몫했다. 전통적인 와인 시장의 큰손인 미국과 영국의 경우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 움츠러드는 데 반해 중국과 러시아는 가격과 무관하게 고가 와인을 꾸준히 사들였다. 상거래 문화의 차이였다. 2005년산 거래 시점부터 중국과 러시아를 합친 와인 시장이 미국을 앞질렀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프랑스는 올 상반기에 32억 유로(약 5조1200억원)어치 와인을 수출했다. 수출 물량으로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7%포인트 줄었지만 액수로는 8.2% 늘었다. 일간 르 피가로는 2005년산 고급 와인의 고가 행진 때문으로 분석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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