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 시조 백일장 8월] “헤매던 밤길 빛나던 달에 젖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장원 김정원씨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떨렸다. “감사합니다”라며 김정원(44·사진)씨는 잠시 말을 멈췄다.

“작년 가을에 차상으로 뽑힌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장원이라니까….”

김씨는 지난해 11월 ‘수선집’이라는 시조로 중앙시조백일장에서 차상에 뽑혔다. 잔잔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시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가족과 나들이를 즐기고 돌아오던 길에 시조를 구상했다.

“바다에서 오징어잡기 대회가 있었거든요. 그냥 하루 가서 아이들이랑 재미있게 노는 행사 있잖아요. 오랜만에 아이들이랑 시간도 보낼 겸 동해로 갔었어요.”

돌아오는 길이 너무 막혔다. 국도로 돌아가야 했다.

“국도로 들어갔는데 안 그래도 길을 잘 모르는데다가 네비게이션도 헤매더라고요.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있어야죠. 그런데, 달이 굉장히 밝게 빛나고 있었어요.”

더운 날, 횡성 부근 어느 국도 위에 떠 있는 달을 보았다. 더운 숨을 쉬며 어둠 속에서 달빛과 함께 달리던 그 밤이 장원의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당선소감을 물어보니 “갑작스러워서…. 너무 당황해서….”라고 말끝을 흐리며 웃는다.

김씨는 세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다. 그러나 한 번도 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동화를 직접 써서 읽어줄 정도였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선 학부모들에게 글을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언제나 김정원씨를 먼저 불렀다. 시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4년 전이다.

“자유시는 너무 산문 같더라고요. 시조는 그에 비해서 규범이라는 게 있잖아요. 정형시의 마지막 후렴구에서 딱 떨어지는 그 깔끔한 맛에 홀린 거죠.”

시조의 맛을 ‘감칠맛’이라고 표현한다. 진부하긴 해도 그 표현이 제일이란다. “저는 글을 많이는 못 써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숙성시켜서 내놓는 편이죠”라며 시조를 김치에 비유하기도 했다. 숙성시킬 수록 풍부한 맛이 우러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글을 쓰기가 쉽지는 않았을 듯 하다. “도둑글을 써요. 이 방 저 방 옮겨다니면서요.” 큰 아이는 대학에 입학했지만 초등학교 5학년인 막내 아들은 개구지기만 하다. 그럼에도 시조를 놓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대학에서도 가정학을 공부했을 만큼 아이들 돌보고 가사일 하는 데 익숙했었죠. 그런데 마음을 흔들 만한 글 하나 써보는 거, 그 꿈이 항상 있었어요.”

감사하다는 말을 또 한 번 쑥스럽게 꺼내며 김씨는 덧붙였다.

“힘들어도요, 나를 뜨겁게 달구는 매력이 있거든요. 그 매력에 빠졌으니 앞으로도 계속 쓰지 않겠어요?”

임주리 기자



■ 이달의 심사평
과거 기억과 현재 심정 잘 엮어내

 처음 시조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시조가 갖는 형식 때문에 어렵게들 생각한다. 막상 3장과 각 장의 4음보 형식을 극복하고 나면, 시조가 시보다 훨씬 편하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 부딪히는 문제가 내면화를 시키는 작업이다. 제한된 형식으로 인해 시조의 내면화 작업은 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깊이가 있고 감동이 있는 작품들은 표면만을 얘기하는 얕은 술수로는 얻기 힘들다.

내면화 작업은 어떻게 시도해야 좋을까. 즉흥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특히 어느 곳을 가서 보고 느낀 감흥을 적을 경우 매우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감정에 들떠 이를 과장하기 쉽고, 자기감정에 빠져 자족(自足)적인 수준에 머물기 때문이다. 이번 달에 선한 작품들은 이 내면화에 그런대로 성공한 작품들이다.

장원으로 꼽은 김정원 씨의 ‘집으로 가는 길’ 은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길을 잘못 들어섰으니 허둥댈 법도 하건만,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하다. 내면화는 둘째 수 후반부부터 셋째 수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심정을 중층으로 엮어내고 있어 잔잔한 감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차상의 작품은 빗방울의 생성과 진행을 그려내고 있다. 평이함 안에 병치적인 사고(북극성, 환한 눈물)를 가져옴으로써 새로움을 더하고 있다.

차하인 윤형진 씨의 ‘빗’은 사물의 특성을 잘 잡아내고 있다. 네 수 중에서 두 수만 골랐는데 사물의 특성이 그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간들의 군상을 압축해서 담아내고 있다. 내면화는 사물이나 현상의 표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삶과 연결되고 그것이 새로움으로 형상화될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석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인지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선하지 못한 작품이 많다. 김술곤, 배종도, 염경희, 박은선(학생),허주영(학생) 씨의 작품들이 마지막까지 거론됐다.  


심사위원: 박기섭, 이지엽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 매달 말 발표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응모 시 연락처를 꼭 적어주십시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각각 10만·7만·5만원의 원고료와 『중앙시조대상 수상작품집』(책만드는집)을 보내드립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를 대상으로 12월 연말장원을 가립니다. 연말 장원은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로 인정, 등단자격을 부여합니다.

◇접수처=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100-759).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