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 음반 낸 그룹 '015B'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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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015B가 여섯번째 앨범을 내면서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대중과의 결별을 선언한 음악』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결별이란 의미가 멤버 정석원의 군입대로 말미암은 불가항력적 작별이란 차원을 넘어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대중과의 결별을 작정한 것이라면 그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전면 부정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혹시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내면서 대중의 구미를 자극하기 위한 고차원적인 상술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도자연스런 의문.
그에 대한 해답은 궁극적으로 음악을 듣게 될 대중이 내릴 수밖에 없지만 신보 발매에 앞서 만난 본인들의 대답은 이랬다.
『7년동안 음악을 해 왔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며 015B란 이름으로 이번이 마지막 음반이 되거든요.아쉬움이 남지 않을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었고 어느 정도 관철시켰다는 생각입니다.』(장호일) 『알려진 대로 이번 음반은 「세기말」이란 화두에 대한 015B의 음악적 표현입니다.지금까지의 015B 음악에 길들여져 있던 대중의 입장에선 「무슨 음악이 이러냐」고불평할 수도 있지만 20세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의 「혼돈」과 「무 질서」를 표현하다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정석원) 『페어웰 투 더 월드』(세계와의 결별)란 부제가 붙어있는6집 『식스스 센스』를 들어보면 첫곡 『일식』에서부터 암울한 분위기가 흐른다.의도된 소음과 잡음,왜곡된 인공음이 곳곳에 등장하는데 그것은 음반의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연출 이다.
음향은 현악반주를 넣고 80년대의 히트곡을 리메이크했던 4집과 5집의 복고풍적 기류와 달리 기계음.전자음이 주를 이룬다.
두 사람이 밝힌 것처럼 『기술과 장인정신의 결합을 부르짖던 20세기초 독일의 바우하우스 예술가들의 정신』을 기계적 대량생산이 지배하는 20세기 말에 구현하는 방법론으로 인공적 합성음향을 택한 것이다.
수록곡은 모두 15곡.이중 대중성과의 타협흔적이 보이는 두세곡을 제외하면 전편에서 기존 국내 가요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과격함과 기괴함이 넘친다.
몽롱한 강세종(015B의 매니저)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잡음과 기괴한 가성.합창이 이어지며 반전을 거듭하는 『독재자』,기계음성을 써 인터네트로 상징되는 정보지상주의를 비판한 『인간은인간이다』등 다채로운 구성을 택하고 있다.
지구의 관제탑과 우주비행사의 급박한 무전교신음이 들리는 『21세기 모노리스』는 가장 015B다운 곡이면서도 세기말이란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015B 음반의 특징인 객원가수로는 이승환(『나의 옛친구』).이장우(『나 고마워요』).EOS의 김형중(『구멍가게 소녀』)등이 참여했고 하모니카의 명인 리 오스카가 연주곡 『성모의 눈물』에 흔쾌히 자신의 기량을 빌려 주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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