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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어렵다며 “ 몬디여! 몬디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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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894년에 시작 된 제물포 고아원에서 수녀들과 아이들이 식사시간에 함께 사진을 찍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제공]

 우리나라에 수녀님이 처음 들어온 건 언제일까. 그들의 눈에는 조선의 사람과 풍경이 어떻게 보였을까. 또 그들은 머나먼 이국땅, 초가집과 온돌방 위에서 어떤 생활을 했을까.

꼭 120년 전이었다. 1888년 7월22일 프랑스인 수녀가 처음으로 조선땅을 밟았다. 두 달간 배를 타고 극심한 뱃멀미를 앓은 끝에 100년간의 종교박해로 숱한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잃은 땅, 조선에 도착했다. 그들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소속의 자카리아 수녀와 에스텔 수녀 등 4명이었다.

9월 8일 서울 명동성당에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한국설립 120주년 감사 미사’가 열린다. 정진석 추기경이 참석, 직접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역사적 무게가 묵직하기 때문이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120돌’에 맞춰 ‘일기책’을 한 권 내놓았다. 『조선에 온 첫 선교 수녀-자카리아의 여행일기』(기쁜소식, 9000원)다. 프랑스 파리를 떠나 제물포에 닿기까지의 여행기와 조선에 도착한 이후의 생활담이 기록돼 있다. 아울러 당시 조선의 풍경과 수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처음 공개했다.

1907년 제주도의 신성여학교에 파견된 수녀들이 말을 타고 있다. 당시 수녀들은 제주도를 ‘깰빠섬’(유럽지리학자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불렀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제공]

책에는 그들이 가졌던 좌절과 소망, 그리고 조선 사람에 대해 품었던 연민과 사랑이 짙게 배어있다. 프랑스 수녀들은 배를 타고 프랑스에서 출발, 중동-스리랑카-싱가포르-베트남-홍콩-중국을 거쳐 52일 만에 제물포에 도착했다. 그리고 푹푹 찌는 한여름에 70리길(제물포∼서울)을 환기도 안 되는 가마를 타고 이동했다.

그들은 쓰레기가 쌓인 골목, 질서없이 늘어선 초가집, 돌로 된 방바닥, 불을 때는 아궁이, 그리고 낯선 한국어에 익숙해져야 했다. 조선인 신자들은 그들을 무척 반겼다고 기록돼 있다. 그들 앞에 엎드려 절을 하기도 하고, 옷과 묵주를 만지며 십자성호를 긋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20세였던 에스텔 수녀는 자애로운 시선과 분홍빛 피부색만으로 보육원 아이들을 매혹시켰다고 한다. 아이들은 감히 수녀님을 만지진 못하고, 용기를 내 손가락을 수녀님 앞치마 위에 올려놓곤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배우다 어려워서 자카리아 수녀는 “몬디여!(주님!), 몬디여!(주님!)”하고 외치곤 했다. 그럼 아이들은 “왜 수녀님은 항상 ‘먼지!’‘먼지!’하시는 걸까?”하며 의아해 했다. 수녀들은 보육원을 운영하며 250명이 넘는 고아들을 거두고 보살폈다.

그러나 자카르타 수녀는 조선에 온 지 6개월 만에 장티푸스에 걸려 선종하고 말았다. 장례행렬에는 숨어 살던 가톨릭 신자들도 많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인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당시 조선의 풍습 탓에 나머지 세 수녀는 집에서 울며 기도만 했다. 이후에 도착한 다른 수녀들도 장티푸스와 콜레라 등 전염병 때문에 많이 목숨을 잃었다.

가톨릭을 심하게 박해했던 흥선대원군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고종의 모친이자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민 부대부인은 수녀들을 궁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대원군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면 바로 세례를 받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주위에 가톨릭 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1896년 10월, 실제 민 부대부인은 비밀리에 ‘마리아’라는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2년 뒤 부인이 세상을 떠날 때 가톨릭 신자인 상궁 한 명이 다른 사람이 눈치챌 수 없는 신호로 임종을 도왔다고 한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장인 김영희 젬마 루시 수녀는 “자카리아 수녀의 일기를 통해 우린 120년 전의 첫 선교 수녀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단순하고 과감하게 사랑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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