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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간첩’ 원정화 인생 34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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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간첩 혐의로 구속된 원정화가 국내에 들어와 찍은 사진. [최승식 기자]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으로 밝혀진 원정화(34)의 간첩 행각은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장교들을 미인계로 농락했던 독일 스파이 마타하리의 활동과 흡사하다. 그는 한국으로의 입국, 정착, 군사 기밀 수집 등 중요한 순간마다 애정 관계를 매개로 남성들을 이용했다. 원정화는 1m60㎝가 채 안 되는 작은 키에 통통한 모습이라고 한다.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는 “다소 살이 오른 모습이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북한 미인형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15세 때 남파 훈련=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원정화는 15세 때인 1989년부터 특수부대에서 남파 공작 훈련을 받았으나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해 92년 제대했다. 이후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쳐 교화소에 수감됐다. 그 뒤에도 아연 5t을 훔치다 적발돼 6년 동안 숨어 지냈다. 당시 북한에서는 아연 1㎏을 훔쳐도 총살형에 처해졌다. 친척의 도움으로 아연 절도 사건은 무마됐다. 그 과정에서 그는 북한 보위부에 공작원으로 발탁됐다. 수사본부는 “보위부에서 그의 대담성과 임기응변 능력, 성(性)에 대한 개방성을 높이 사 공작원으로 포섭했다”고 분석했다.

원정화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먼 인척 관계다. 그의 어머니가 재혼한 김모씨 누나의 딸이 김 위원장 아들의 부인이다. 평양 미술대학을 나온 양아버지 김씨는 2년 전 한국에 잠입해 간첩 활동을 벌이다 이번에 구속돼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간첩 활동은 98년 중국에서 시작했다. 중국 옌지(延吉) 등에서 탈북자를 찾아내 중국 공안을 통해 강제 북송하는 일을 맡았다. 그가 북한으로 보낸 사람 중에는 99년 실종된 한국인 사업가 윤모씨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성관계 통해 남성들 이용=원정화는 중국의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일하며 탈북자와 한국인 남성들을 접촉했다. 그러던 중 보위부로부터 남한 침투 지령을 받았다. 그는 한국 남성과 결혼해 입국하는 방법을 택했다.

원정화는 중국 동포로 가장해 2001년 한국인 근로자 최모씨와 결혼해 한국으로 왔다. 입국 때 임신 7개월이었다. 북한 보위부는 “임신한 상태인 게 (한국 공안 당국의) 의심을 피할 수 있다”고 지시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한국에 입국한 직후 최씨와는 바로 이혼했다. 아이는 최씨의 딸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에서 한때 동거했던 한국인 사업가 조모씨의 아이였다. 조씨는 유부남이었다.

원정화는 그해 11월 국가정보원에 탈북자임을 스스로 밝히고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2002년 경기도 한 경찰서의 경찰관을 만나 수년간 교제했다. 그는 경찰관을 통해 탈북자의 주소지 등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엔 결혼 정보업체를 통해 김모 소령을 만났다. 두 사람은 연인 관계가 됐다. 보위부는 김 소령을 중국으로 유인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북한으로 납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원정화는 김 소령에게 중국 여행을 가자고 여러 차례 제의했다. 그러나 김 소령은 “군인이 함부로 출국할 수 없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해에는 8세 연하의 황모 중위를 만나 동거를 했다. 김 소령, 황 중위를 포함해 원정화와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군인들은 모두 7명에 이른다.

원정화는 최근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남성 3명과 선을 보기도 했다. 수사 관계자는 “일본 남성과 결혼해 영주권을 얻어 황 중위를 일본으로 데려온 뒤 함께 북한으로 가려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상언·박유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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