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를움직이는사람들>16.효성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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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93년 봄 저녁 무렵 경기도안양의 한 국도(國道)위.
동양나이론 안양공장을 시찰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조석래(趙錫來)효성그룹회장은 옆자리에 앉은 수행비서에게 물었다. 『어디서 내려줄까.』(趙회장) 『(머뭇거리며)아무데서나 내려 주세요.』(수행비서) 『그래? 그럼 여기서 당장 내려.』(趙회장) 趙회장은 인적도 뜸한 국도변에 차를 세워 비서를 하차시키고 그대로 가던 길을 달려가버렸다.
『어디서 내려달라고 당당하게 말해야지.젊은 사람이 그래가지고큰일 하겠나.』 趙회장은 이렇게 얘기했다고 전한다.임직원에게 적극성과 정직성을 강조하는 趙회장 관련 일화중 하나다.
최고경영자들에겐 이밖에도 「해당분야에 대한 깊이있는 지식 」을 요구한다.
趙회장 자신이 학구적이며 전문경영인으로 불리길 좋아한다.사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를 오너로 보지 말고 전문경영인으로 생각해 팀플레이를 하자』고 당부한다는 것.
경기고 졸업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와 미국 일리노이공대 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한 趙회장은 영어.일어에 능하다.
대외활동도 많아 태평양경제협의회(PBEC)한국위원장등 재계의대외 얼굴역을 맡기도 한다.최근 자신이 공부한 미국 일리노이공대 재단이사로 피선되기도 했다.
***宋회장은 오너의 장인 몇년 전까지만 해도 보수안정형이었던 효성이 최근 변화.개혁의 공격형으로 변하고 있다.효성은 그간의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21세기 주력사업을 통신.유통.금융으로 정하고 그룹이미지 쇄신을 위해 올 연말까지 동양나이론을비롯한 전계열 사의 사명을 「효성」으로 바꾸는 CI개편작업을 추진중이다.趙회장은 허식과 과장을 싫어한다.따라서 경영진에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정도를 가라』는 주문을 한다.
趙회장 다음으로 효성그룹에서 주목해야할 사람은 송인상(宋仁相.82)동양나이론 회장.
宋회장은 趙회장의 장인으로 재무장관.수출입은행장.대사를 지냈으며 오랜 관계.금융계 생활을 통해 쌓은 경륜과 폭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趙회장의 경영방향에 대해 조언을 해주며 그룹의 병풍역할도 하고 있다.효성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매 월 한번씩 열리는 그룹사장단회의.
매월 첫째주 서울마포 본사 회장실에서 열리는 그룹사장단회의는趙회장이 직접 주재하며 17개 계열사 사장들이 전부 참석한다.
효성의 그룹사장단회의는 마라톤회의로 소문나 있다.중요한 현안이있을 때는 결론이 날 때까지 밤늦게까지 진행되 는 경우도 있다. 효성의 최고경영진은 56년 그룹창업에서 67년 공채1기를 뽑을 때까지 들어와 일한 원(元)멤버들과 외부 영입인사등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다른 그룹에 비해 외부 영입출신 최고경영자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결론날 때까지 계속 회의 특히 최근 몇년동안 외부인사 영입이 많았는데 여기에는 趙회장의 기존 경영진에 대한 불신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다.70년대 재계 10위권내의 대그룹이었던 효성이 17위선으로 밀린 것은 그룹내에 자신을 보필해줄 수 있는 탁월한 경영자들 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趙회장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최고경영자중 효성 원멤버로는 김인환(金仁煥.59)종조실사장,백영배(白榮培.52)동양나이론사장,원무현(元武鉉.58)효성물산사장 등이 대표 주자들.
외부 영입인사로는 국세청차장.신용보증기금이사장 등을 지낸 배도(裵渡.63)그룹고문,청와대 비서관.중소기업진흥공단이사장 등을 역임한 유종렬(柳鍾烈.57)효성중공업사장 등이 꼽힌다.또 금성히다치시스템 사장을 지낸 황칠봉(黃七鳳.60) 효성데이타시스템사장,삼성데이타시스템 대표를 지낸 이명환(李明煥.52)동양폴리에스터사장도 있다.
효성의 최고경영진은 KS(경기고-서울대)출신이 강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점도 두드러진 특징이다.趙회장 자신이 경기고 출신(50회)이며 배도 고문,김인환.유종렬.원무현.정완수(鄭完洙.57)사장등 사장.회장단 19명중 경기고 출신이 10명이나 된다. 이들중 경기고-서울대출신은 배도 고문.정완수 사장등 5명.이 때문에 경기고.서울대 출신이어야 효성에서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있다.김인환 종조실사장은 趙회장의 경기고 2년후배(52회)로 효성입사전 ㈜한국전자계산 과장으로 있 다가 73년 효성그룹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입사후 9개월만의 과장진급을 시작으로 고속승진을 거듭해 14년만인 87년 동양폴리에스터사장에 올랐다.94년부터 종조실장을 맡아 趙회장이 최근 표방한「공격경영」을 보좌한다.
효성의 전략사업인 개인휴대통신(PCS)사업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효성중공업 사장시절 울산공장에서 노조가 사무실을 점거하고대화를 거부하자 포클레인을 불러 벽을 허물고 들어가 철야대화 끝에 협상을 타결시킨 일화도 있다.
***김인환.백영배 대표주자 동양나이론 백영배 사장은 효성 공채기수의 선두주자.67년 공채1기로 입사해 12년만인 79년(35세) 이사로 승진했고 27년만인 94년 주력회사인 동양나이론 사장에 올랐다.
과장시절 趙회장이 『당신은 이사를 해도 될 사람』이라며 일찍그를 재목감으로 꼽았다고 한다.
유종렬 효성중공업사장은 경기고.육사출신으로 미국 일리노이공대대학원에서 기계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5공시절 청와대 비서관.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지내다 88년 효성에 몸담았다.효성 B&H.효성바스프사장을 거친 뒤 94년 주력 효성중공업사장을 맡았다.柳사장은 특유의 「신바람경영」을 펼쳐 적자에 허덕이던 효성중공업 경영을 흑 자로 바꾸는등 경영력을 인정받고 있다.
원무현 효성물산사장은 그룹에서 손꼽는 영업통.67년 동양나이론에 입사해 효성물산이사.도쿄(東京)지점총괄.수출내수부문 부사장등 주로 해외영업으로 잔뼈가 굵었다.
***후계문제는 거론 안돼 추지석(秋智錫.55)효성바스프사장.이명환 동양폴리에스터사장 등의 외부영입 사장들도 활동이 돋보인다. 삼성에서 영입된 李사장은 사장단회의 등에서 「신선한 제의」를 많이 해 주목을 끌고 있다.
효성은 전체 회장.사장단중 이공계 출신이 60%를 차지하는 점도 특징.세 아들(모두 20대)을 두고 있는 趙회장은 아직 후계문제와 관련해 특별한 언급을 한 적이 없다.올해 61세인 趙회장의 효성에서 후계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趙회장은 친인척들의 경영참여를 철저히 배격,취직청탁이 들어오면 다른 회사에 소개해 줄지언정 효성에는 입사시키지 않는다.따라서 효성엔 친인척 경영자가 거의 없다.
趙회장의 4촌 처남인 송형진(宋炯鎭.53)씨가 효성중공업 건설부문 부사장으로 있지만 그도 현대출신으로서 능력으로 자신의 몫을 하고 있다는 것.趙회장의 「개혁변화」가 과거 당당한 10위권내의 그룹이었으나 지금은 17위선에 머무르고 있는 효성을 다시금 비상시킬 수 있을 것인지 관심거리다.그런 점에서 PCS사업 진출은 그룹의 새 지평을 열고 분위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첫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동국제강그룹편>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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