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달라져야한다>8.날치기와 실력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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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93년12월2일의 국회 본회의장-.황낙주(黃珞周)국회부의장(현 국회의장)은 오후11시40분 여당의원 20여명의 호위를 받으며 의장석으로 향하고 있었다.예산안처리를 위한 사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순간 민주당의원들이 『막아라』고 고함치며 벌떼같이 달려들었다.누군가가 『의사일정…』이라고 말하던 黃부의장의 입을 틀어막고급소를 찔렀다.다른 의원은 黃부의장의 머리채를 끌어당겼다.1백63㎝ 단구의 黃부의장은 이리 끌리고 저리 밀렸 다.입술이 찢기고 안경도 깨졌다.실신끝에 결국 병원으로 이송된 순간 야당의원들의 『승리했다』는 환호성이 터졌다.
이런 수라장을 연출한 뒤에야 여야는 다시 협상을 시작했다.그리고 5일뒤에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날치기와 실력저지.52년 2대국회때부터 94년 14대국회 때까지 44회의 날치기가 이뤄졌다.

<그림 참조> 평균 한해에 한번씩 날치기를 경험한 셈이다.그때마다 야당의원들은 육탄공세로 맞섰다.
수법도 해가 갈수록 다양해졌다.국회 운영위 안병옥(安秉玉)입법조사관은 『이젠 더 이상 새로운 수법이 나오기 힘들것』이라고단언한다.
손바닥으로 의결하고 (90년3월 문공위),의석에 앉아있던 부의장이 별안간 일어나 통과를 선포하는가 하면(90년7월 본회의),녹음기 녹취로 속기록을 대신(90년12월 본회의)하기도 했다. 94년12월 예산안처리때는 이춘구(李春九)부의장이 본회의장 2층 지방기자석에 돌연 나타나 무선마이크로 가결을 선포했다.의사봉도 두드리지 않았다.
당시 민자당 수석부총무였던 권해옥(權海玉)의원은 『난투극을 벌이는 추태를 보이는 것 보다는 신선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의원들 스스로 그런 일들이 너무 일상화된 탓인지 부끄럽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반면 야당의 원들은 욕설과 몸싸움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솔직히 대다수 의원들은그날 통과된 법안을 지도부가 왜 문제삼고 있는지도 잘 몰라요.
다만 위에서 통과시켜선 안된다고 하니까….반성해야죠.』국민회의박광태(朴光泰)의원의 고백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야당의원은 『얼마나 몸바쳐(?)열심히 싸우느냐에 따라 총재의 눈에 들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가 되기도한다』고 했다.
***통과수법도 갈수록 다양 문제는 날치기와 폭력사태가 밥먹듯이 벌어져도 곧 흐지부지 돼버린다는 것이다.여야 모두 하루 이틀 핏대를 올리다 끝내 버린다.그러다보니 악순환이 계속된다.
국회는 91년 윤리위원회를 만들었다.더이상 국회의 품위가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뒤에도 날치기와 폭력사태는 계속 재연됐다.하지만 윤리위는 이 문제로 지금껏 한번도 가동된 적이 없다.
미국이나 영국 등 정치 선진국들에선 날치기란 생각할 수도 없다.지난해말 미국에선 연방정부의 기능정지사태가 벌어졌다.민주당정부의 예산안을 다수당인 공화당이 집행하도록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정부업무가 중단되는 일이 있더라도 국회 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게 그네들의 정치인식이다.
***.반대위한 반대' 고백도 미국은 또 의장이 본회의에서 연설하는 동안 의원들이 회의장에서 퇴장하거나 돌아만 다녀도 「의회모독」으로 간주된다.그 벌로 퇴장이나 출석정지가 명령된다.
한데 우리는 의사당 안에서 주먹질이 오가도 의장이 경호권을 행사할 수 없다.
날치기와 그에 대항하는 폭력사태가 끊이지 않게 된 것은 나름의 역사가 있다.오랜 군사정권 체제를 거치면서 여당은 정치라는게 대화가 아니라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는 정치문화를 만들어냈다. 야당은 그 반대로 방법이야 무엇이든 여당에 반대하는 것이 자신들의 본분이라고 생각해왔다.
협상대표들에게 전혀 여지를 남겨주지 않는 정치풍토도 한몫을 했다.지난해말 여야간 선거구협상을 할때다.신한국당 서정화(徐廷華)총무는 선거구 인구획정을 하면서 야당측에 좀 양보하는 듯한발언을 했다.그러나 하루만에 그는 초강경으로 돌 아섰다.상부로부터 『왜 당신 멋대로 그런 발언을 하느냐』는 질책을 받고 나서다. 『여야를 떠나 총무는 아무 실권도 없어요.총재 맘대로니까요.그러다보니 협상하다 말고 전화를 걸어 총재한테 재가를 받는 사태가 비일비재하죠.』총무를 맡았던 한 중진의원의 고백이다. 국회의장이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사회권을 의장이 갖고있기 때문에 의장만 중립을 지켜주면 날치기통과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93년 예산안 통과당시 『나는 날치기는 못하겠다』며 사회보기를 거부했던 이만섭(李萬燮)국회 의장은 그뒤 민자당에서 「변절자」라는 혹독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국회가 더이상 시장바닥이 돼서는 안된다.그러기 위해선 날치기와 실력저지란 단어 자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풍토부터 고쳐야 한다.국회의장이 멱살을 잡히고 명패가 날아다니고,주먹질이 오가는 이런 아수라 국회는 14대로 막을 내려 야 한다는게15대 당선자들에게 내려진 한 과제다.
국회의장 다치기 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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