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무슨 낙으로” … 올림픽 금단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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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박모(28)씨는 올림픽 기간 내내 사무실에서 휴대전화 DMB로 중계방송을 몰래 시청했다. 한국 선수가 승리하거나 메달을 따는 경기가 중계될 때면 스무 명 남짓 근무하는 사무실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작은 소리로 ‘와’ 하는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올림픽이 폐막된 다음날인 25일, 박씨는 ‘올림픽 금단 현상’을 호소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났지만 자신도 모르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새로운 올림픽 소식이 없나 뒤져보게 된다는 것이다. 박씨는 “올림픽 기간에는 업무 스트레스를 잊고 살았는데 ‘이제 무슨 낙으로 지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 의욕을 되찾으려면 꽤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짜릿한 감동을 남긴 17일간의 베이징 올림픽이 폐막됐다.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 순간마다 환호하던 사람들이 이제 허탈감 등 크고 작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

◇“꿈 깨니 어려운 현실”=일상으로 되돌아온 뒤 어려운 경제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ID ‘여름의 문’은 “지난 4년 정말 고생한 우리 선수단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어느 것 하나 나아진 것 없는 경제 현실 속에 몸부림쳐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올림픽 후 중국 펀드가 어떻게 될지를 걱정하는 이들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올림픽을 앞두고 개발과 건설 붐을 맞았지만 폐막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경기 침체에 빠지는 ‘밸리 효과(Valley Effect)’를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회사원 이모(33)씨는 “올림픽 때는 잊고 있었는데 중국 경기가 나빠질 수도 있다고 해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지난해 4월부터 중국 펀드에 들었는데 지난해 10월 6000선을 돌파하던 중국증시(상하이종합지수)가 1년도 안 돼 절반 이하인 2500선대로 추락하면서 수백만원의 손해를 봤다”고 했다.

◇“야식 먹었더니 살쪄 고민”=여성들 사이에선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간식을 먹는 바람에 찐 살을 빼야 한다”는 고민도 등장했다. 치킨점 체인인 K치킨의 경우 올림픽 기간이 포함된 이번 달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0% 증가했다. ID ‘건어물녀’는 “올림픽 때문에 내 살이 늘어났다. TV를 보고 있으면 입이 심심해서 과자 같은 걸 먹고 잤더니…”라고 말했다. ID ‘로사리아’는 “밤 늦게까지 보고 또 보면서 밤식빵 반 통을 혼자서 먹었다”고 탄식했다.

반면 일부 주부는 올림픽이 끝난 것을 오히려 반기고 있다. 방송사마다 올림픽 중계에만 편성이 쏠려 이들이 즐겨 보는 드라마 방영이 줄줄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주부 김모(50)씨는 “욕 먹을까 봐 쉬쉬하고 있었는데 올림픽 기간에 즐겨 보는 드라마를 해주지 않아 신경질이 났다”고 털어놓았다.

올림픽 대표선수단의 도보 퍼레이드가 25일 서울 태평로에서 열렸다. 1984년 LA 올림픽 카퍼레이드 이후 24년 만이다. 시민들이 선수단을 향해 환호하고 있다. [양영석 인턴기자]

◇올림픽 관심 야구로=그러나 스포츠팬들 사이에선 짜릿한 감동을 국내 스포츠 경기에서 다시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번 올림픽으로 가장 뜬 종목은 단연 야구. 직장인 송혜민(28)씨는 “원래 축구팬이지만 올림픽을 통해 야구의 재미를 만끽했다. 26일부터 재개되는 프로야구장에 가서 야구팬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ID ‘후니’는 포털 네이버의 한 카페에 “올림픽이 끝나니 TV에서 볼 게 없어졌다. 이제부터 프로야구에 올인해야 하나. 롯데·기아·삼성의 4위 경쟁이 박 터질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홈페이지에 ID ‘정연훈’은 “모금을 해서 김경문 감독님께 꽃다발이나 축하 플래카드를 드리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장주영·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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