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그 후 <上> ‘중앙’ 힘 과시 … “중국 식대로” 흐름 이어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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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을 지탱하고 있는 공산당과 정부의 핵심 지도부, 즉 ‘중앙(中央)’의 힘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줬다. 공식적으로 400억 달러를 퍼부으면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낸 배경에는 목표를 정한 뒤 끝까지 밀어붙이는 ‘중앙’이 있었다. 국민당이 중국을 통치하던 1930년대의 장제스(蔣介石) 정부가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던 ‘중앙’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은 최고 권력이자 권위다. 공산당이 통치하는 지금의 중국은 더욱 그렇다.

동시에 두드러진 것은 축선(軸線)의 개념이다. 과거 왕조의 통치를 상징하던 풍수상의 용맥(龍脈)이 이번 올림픽에서 다시 살아났다. 메인 스타디움인 냐오차오(鳥巢)와 수영장 수이리팡(水立方)은 명(明)·청(淸)대의 왕궁이 들어섰던 풍수의 주축선인 용맥에 올라앉아 있다. 이에 대해선 “중심에서 모든 것을 거둬들이려는 사고의 표현”이라는 평이 뒤따른다. 주축을 살려 내부의 힘을 고도로 집결하려는 공산당 집권 개념이 표현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2012년 올림픽 개최지 런던을 상징하는 이층버스가 24일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 행사가 진행 중인 주경기장에 들어와 트랙을 돌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중앙’과 ‘축선’이 상징하는 것은 권력의 집중화다. 중국은 고도로 집중된 권력을 이용해 지구촌 최대의 이벤트를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지구촌의 주류가 된 세계화 속에서 많은 국가가 탈국가주의와 탈민족주의의 궤도에 올라선 것과는 전혀 다른 흐름이다. 미국 오버린대의 중국 전문가 마크 블레처 교수는 이 경향을 “역사를 지배해 온 흐름에 대한 중국의 저항”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는 중국 공산주의 혁명이 전통적 사회주의 혁명 노선인 도시 노동자와의 연대를 포기하고 중국 실정에 맞는 농촌을 선택한 점을 우선 꼽는다. 또 80년대 후반 들어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해체 내지 몰락의 운명을 걸었던 것과는 달리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절묘한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해 번영을 구가한 점도 마찬가지로 본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이를 재현했다. 세계화의 흐름은 각 국가에서 지방 분권주의 강화와 중앙정부 권력 분산을 낳았지만, 중국은 올림픽을 통해 더욱 중앙집권화한 ‘국가’의 힘을 여실히 보여 줬다.

우선 경기 결과에서도 국가적 차원의 노력을 기울인 중국이 미국을 훨씬 앞질렀다. 또 110m 허들에 출전했다가 부상을 이유로 예선에서 포기한 류샹(劉翔)의 경우는 중국이 중앙에 의해 잘 통제된다는 것을 잘 보여 줬다. 류샹에 대해 여론이 들끓자 서열 6위이자 올림픽을 총괄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나서 위로를 했다. 이어 대표적인 중국 언론들이 나서 “류샹은 최선을 다했다”며 두둔하자 여론이 바로 잠잠해지더니 오히려 ‘류샹 위로’ 분위기로 변화했다. 중앙의 ‘가이드라인’에 언론과 국민이 일제히 따라가는 전체주의적 성향을 잘 보여 준 것이다.

장미란이 24일 폐막식에서 한국대표로 입장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서울의 한 외교 전문가는 “중국은 앞으로도 올림픽을 통해 잘 드러난 국가주의적 행보를 계속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구촌의 세계화 흐름에 맞서 중국은 국가주의와 실용주의적 노선이 잘 버무려진 시스템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올림픽 성공으로 공산당의 통치 기반은 강화됐다. 세계화의 외형은 따라가겠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국가주의의 틀을 더 다졌다. 중국의 발전 방식은 세계화에 반대하는 일부 개발도상국의 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커졌다. 국제사회의 세계화 흐름에 대한 중국의 ‘국가주의 저항’은 국제사회의 새로운 기류로 부상할 수도 있다.

올림픽 이후 정치적인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 티베트·신장(新疆)위구르 등의 분리 독립 움직임도 향후 중국 내 안정을 해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4세대 권력 지도부의 정점인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올림픽 성공을 계기로 중화민족주의를 한층 강화해 이런 사회적 욕구를 눌러 갈 가능성이 높다.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견지해 온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라는 틀에 국가주의와 제한적인 개방형 정치 시스템을 결합한 형태로 발전 방향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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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수로 금메달을 나눌 경우 중국의 순위. 중국은 금메달 51개 등 총 100개의 메달로 1위를 차지했지만 100만 명당 금메달 수는 0.03개에 불과하다. 인구 기준 금메달 1위는 100만 명당 2.16개의 자메이카며 한국은 100만 명당 0.28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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