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과 한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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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32면

경제성장이 사회 발전 및 환경 보존과 함께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히도 지구촌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당장 생계부터 해결해 줘야 할 빈곤 인구가 수억 명에 달하는가 하면 경제성장이 자연자원과 환경에 가져오는 부담 또한 위험 수준이다.

세계의 성장 센터인 중국에서는 매주 한 개꼴로 화력발전소가 생겨난다.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 10여 년 사이 배로 늘어 세계 전체 배출량의 20%를 넘어섰다. ‘성장부터 먼저 하고 환경 정화는 나중에’(grow first, clean-up later)가 지금까지의 성장 패턴이었다. 주요 선진국이 걸어온 길이었고, 많은 개발도상국이 이 길을 따라가다 보니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 velopment)이 새로운 성장개념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7년 환경과 발전 세계위원회가 발표한 ‘우리 공통의 미래’라는 보고서 때부터였다. 92년 유엔이 주관한 리우데자네이루 회의에서 분위기가 고조됐고, 2002년 요하네스버그의 지속 가능 발전 세계대회는 지구촌 공동체에 대해 2005년까지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에 들어가 달라고 촉구했다.

그 성장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녹색성장(green growth)이다. 유엔 경제사회 아시아·태평양위원회가 2005년 서울 각료회의에서 빈곤 퇴치와 환경 보존의 ‘윈-윈’전략으로 이를 채택, 뒷받침하고 있다.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 ‘서울 이니셔티브’로 불리기도 한다.

녹색성장의 핵심 개념은 세 가지다. 환경 보전은 더 이상 경제성장의 제약 요인이 아니고 성장과 지속 가능 발전에 긴요하다는 것이 첫째다. 생산과 소비는 한 번 만들어 쓰고 버리는 단선(單線)적인 것이 아니고 재생·재활용하는 전일(全一)적 순환 과정이 그 둘째다. 제품 계획과 생산 소비 등 모든 과정에서 환경생태 효율성(eco-efficiency)을 확립해 경제성장과 환경 파괴의 고리를 차단한다는 것이 셋째다. 일본 정부의 ‘3R’ 구호가 대표적이다. 자원 이용의 효율화와 제품 수명 연장으로 자원의 소비와 낭비를 줄이고(Reduce), 쓰고 난 제품과 부품을 재생해 재사용(Reuse)하고, 재활용시킨 원료로 새 제품을 만드는(Recycle) 것이다.

그러나 구호만 요란할 뿐 경제성장에 따른 환경 파괴는 지구촌 곳곳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미국 예일대의 환경 법 정책센터가 비교 작성한 2008 환경실행지수(EPI)에 따르면 스위스와 북유럽 등 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고, 일본이 21위, 미국은 39위였으며 한국은 51위, 중국은 105위, 인도는 120위의 ‘환경 파괴 성장 국가’로 나타났다.

녹색성장은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성장과 환경 보전을 함께 이루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비용이 너무 비싸고 먹고살기가 급한 개도국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저이산화탄소화(a lower carbon world) 또한 환경적 지속 가능 경제성장을 위한 정책 범주의 하나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아직까지는 배출량의 큰 몫을 점하고 있지만 신흥 성장 국가들의 배출량 증가 속도는 90년부터 2004년까지 중국(109%)·인도(97%)·태국(180%)·말레이시아(221%)·이집트(110%)·한국(93%) 등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따라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이행하고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투자와 기술 개발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글로벌 공통의 국가적 과제다.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은 이 시대, 그리고 미래를 향한 키워드임에는 분명하지만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한국의 새 국가 전략이 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우선 일본·독일·미국 등 선진국들은 10여 년 전부터 이 분야 기술 개발을 주도해 왔다. 한국의 국토환경은 태양열과 태양광·풍력·조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 자원마저 빈약한 실정이다. 게다가 사회적 편익이 총비용을 능가하는 데 5∼10년 이상이 걸리는 경제성의 난관을 넘어야 한다. ‘747’과 대운하 등 ‘토목 성장’과 ‘저이산화탄소 녹색성장’의 상관관계도 궁금해진다. 선진국들이 10여 년 전부터 착실히 추진 중인 것들을 이제 와 새 국가 패러다임으로 포장하는 이명박 정부의 아이디어 빈곤이 보기에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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