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확산 … 반전의 신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6호 28면

증시의 투자 심리가 비관론 쪽으로 급속히 쏠리고 있다. 백기 투항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낙관론을 버리지 않던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은 급기야 코스피지수가 1500 선까지 내주자 자신감을 잃은 모습이 역력하다. 이들은 당분간 지수가 1500 선을 넘기 힘들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쏟아낸다.

펀드와 주식을 들고 있는 투자자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제라도 현금화해야 할 것인지 조바심이 든다. 모두들 호재보다 악재에 훨씬 민감하다. 미국 증시의 상승보다 중국 증시의 하락에 더 신경을 쓴다. 공포심이 시장을 지배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 보면 바람직한 변화일 수 있다.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희망의 단초일 수 있다. 의미 있는 가격 조정만큼 좋은 재료는 없다. 그래야 새로운 매수 세력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버블 붕괴의 역사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대중이 공포에 떨며 주식을 던질 때 시장은 바닥권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시장은 언제나 앙탈을 부려 왔다. 대중이 상식으로 여기고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 주었으면 하는 방향으로는 잘 가지 않았다. 거꾸로 대중이 자포자기하면 얄궂게도 그 방향으로 가곤 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분위기에 휩쓸려선 안 된다. 얼마 전 유가 하락 희소식으로 지수가 1600 언저리까지 반등했을 때가 현금 비중을 늘릴 기회였지만 지금은 늦었다. 지수가 1400대까지 다시 밀린 상황에선 배짱을 갖고 버텨 봐야 한다. 적절한 현금화의 기회는 얼마든지 다시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노출된 악재는 더 이상 악재가 아니다. 그게 해소되면 오히려 호재로 작동하며 시장을 반전시킨다. 그런 기대를 품고 지켜봐야 할 악재가 몇 있다. 먼저 미국의 양대 국책 주택금융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처리 문제다. 원칙대로 시장에 맡겨 둔다면 파산을 피할 길이 없다. 부실화 규모가 무려 1조 달러를 넘는다. 미 정부는 과연 이를 방치할까, 아니면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제할까.

결국 구제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방치할 경우 미국 금융 시스템이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실 채권의 상당 부분을 중국·일본·한국 등 외국 중앙은행이 쥐고 있는 상황이다. 이게 휴지 조각이 된다면 앞으로 세계 각국은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 자산을 빼 버릴 것이다. 이는 곧 미 달러화가 국제 기축통화로서의 기능을 잃게 되고, 미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재정 적자를 메우는 일이 불가능해짐을 의미한다.

다음 악재는 리먼 브더더스 문제다. 이 역시 그대로 두면 파산이 불가피한 지경이다. 미 월가는 헐값에라도 새 주인을 맞아 회사를 살리라는 압력을 경영진에 넣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이 1등 구원투수로 부상한 게 아이러니다. 아무튼 리먼 사태가 해결의 가닥을 잡으면 시장은 반색할 것이다. 올림픽 뒤 중국 경제에 대한 걱정도 그렇다. 막상 닥쳐 보니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안도감이 나올 수도 있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시장의 밸류에이션(내재가치와 비교한 가격)도 좋아졌다. 한국 증시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9배, 중국은 15배 정도로 낮아졌다. 역사적인 바닥 수준이다. 경기침체에 따른 미래 실적의 악화를 감안하더라도 더 이상 크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감을 일게 한다.

물론 글로벌 증시의 본격 회복 시점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게 1년이 될지 5년이 될지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더 깊은 바닥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현금을 확보하고 있는 투자자 입장에선 전혀 서두를 이유가 없다. 문제는 펀드와 주식을 잔뜩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공포심의 포로가 돼선 안 된다. 당분간 주식 시세나 펀드 수익률을 아예 들여다보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