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명 ‘실행이 힘’ … 공기업 혁신 승부수 띄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6호 27면

“여러분, 쌍수를 들어 환영합니다.”
20일 한국전력 사장에 선임된 김쌍수(63·金雙秀·사진) 전 LG전자 고문이 환영사를 할 때마다 즐겨 쓰던 표현이다. 그는 LG전자 창원공장에서 일할 때, 공장 견학을 하러 온 손님들에게 자신의 특이한 이름을 각인시키는 이 같은 멘트로 좌중을 웃기곤 했다. 흔치 않게 이름에 ‘쌍(雙)’자가 들어 있는 것은 그가 쌍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자산 65조6426억원(2007년 말) 규모의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을 3년간 이끌게 된 김 사장은 대통령 임명 절차를 거쳐 25일께 취임한다. 한전에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가는 게 처음인 데다 그가 LG의 대표 글로벌 기업을 이끌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제까지 한전 사장 자리는 전직 고위 관료의 몫이었다.
 
이윤호 지경장관과 LG서 한솥밥
간판 공기업인 한전에 스타급 민간 CEO를 영입하려는 정부의 의중은 일찌감치 감지됐다. 6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추천한 한전 사장 후보들이 모두 한전 내부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재공모 결정을 내리면서부터다. 지난달 중순 한전 사장 재공모에 지원한 22명 가운데 김 사장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그의 사장 선임 유력설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촛불 정국’ 이후 공기업 개혁 추진력이 약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정부로서도 김 사장 같은 간판급 CEO가 절실했다. 최대 공기업인 한전에 민간 CEO를 앉히면 공기업 개혁의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는 데다 정·관계 출신의 ‘공기업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도 수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전 사장 재공모에 김 사장이 지원하도록 정부 고위 인사까지 나서 삼고초려(三顧草廬) 이상의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이 LG전자 CEO를 지낼 당시,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LG경제연구원장이었다.

한전 최초의 민간기업인 출신 사장 김쌍수

美 GE도 감탄한 품질 관리
김 사장은 경북 김천 출신으로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했다. 2003년 LG전자 CEO로 발탁될 때까지 35년간 냉장고·세탁기 등 백색 가전제품을 만드는 경남 창원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기계밥을 먹으면서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백색 가전제품을 그룹의 최고 돈줄(캐시카우)로 부활시켰다. 그가 선도적으로 도입한 ‘6시그마(불량률을 제품 100만 개당 3~4개 이하로 줄이는 품질 관리)’ 운동이 큰 역할을 했다. 직원들이 김 사장의 영문 이니셜 ‘S.S. Kim’을 ‘Six Sigma Kim’이라 부를 정도로 그는 6시그마 신봉자다. 6시그마의 원조인 미국 GE조차 창원공장의 품질 관리를 보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LG전자 근무 시절 ‘쌍칼’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추진력이 강하고 명확한 일처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직원을 혼낼 때는 눈물을 쏙 빼낼 정도로 강한 성격이지만 뒤끝은 없다”고 그를 평했다.

LG전자의 휴대전화가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은 데는 그가 기여한 측면이 크다는 평가다. 그의 지휘 아래 초콜릿폰·샤인폰과 같은 ‘텐 밀리언셀러(1000만 대 이상 판매한 히트 상품)’가 나왔다.

“주먹밥 먹듯이 단번에, 가능한 한 모든 것은 한 방에 끝내자.” “깨어 있는 동안은 일만 생각하라. 회식을 할 때에도 업무 이야기만 하라.” 지금도 LG전자 내에선 그의 어록이 회자된다.

이런 ‘불도저식 경영’은 한때 임원진과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다. ‘혁신 전도사’ 김쌍수와 ‘영국 신사’로 불리던 전임자(구자홍 LS그룹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워낙 달랐기 때문이다. 구자홍 회장은 권한 위임(empowerment)을 중시한 반면, 김쌍수 사장은 현장에서 바로 문제를 찾아 직접 해결하는 것을 좋아했다.

김 사장은 2007년 1월 LG전자 CEO에서 물러나 LG그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올 3월 현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LG전자 고문으로 지내 왔다.

한전 올 상반기 적자 1조원
김 사장 특유의 혁신 브랜드가 공기업인 한전에서도 통할지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한전은 유가 상승으로 상반기에만 1조원대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김 사장은 위기 상황에서 한전을 이끌어가야 한다.

시장에서는 김 사장이 원가 절감 등 경영 합리화를 적극 추진하고 해외 진출, 대체에너지 개발 등 새로운 수익사업을 더 활발하게 벌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김 사장이 에너지 전문가가 아니고, 주로 현장에서만 잔뼈가 굵은 경영자라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다. 게다가 공기업 사장은 남다른 정치 감각이 필요한 자리다. 공기업 사장을 ‘반쯤은 정치인’으로 여기는 것도 그래서다. 국회·감사원과 관련 부처 등의 견제가 많기 때문에 소신을 갖고 경영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전 내부에서 “누가 사장으로 와도 비슷한 것 아니냐”는 심드렁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과거의 경험칙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본부장은 익명을 전제로 “김 사장이 한전에 남아 있는 ‘공무원 마인드’를 확 바꿔 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는 “KT가 민영화된 이후 신규 채용이 늘어 조직이 젊어지고 서비스도 고객 중심으로 눈에 띄게 바뀐 반면, 한전은 임대 수익이 발생할 수도 있는 유휴자산을 그냥 놀리는 등 아직도 조직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쌍수를 들어’ 김 사장의 한전행(行)을 환영하기엔 그의 앞에 놓인 과제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