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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김연아가 만화 주인공이라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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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 05면

심장이 쪼그마한 나는 직접 나서는 승부는 질색이다. 그러나 남들끼리 이기느니 지느니 겨룬다면 도시락을 싸서 따라다닌다. 평소에는 각종 프로 스포츠는 물론 핫도그 먹기 대회, 강아지 경주, 연예인 당구까지 섭렵하곤 한다. 그러니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올림픽이라는 뷔페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게다가 내게는 남들보다 몇십 배 그 경기를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 바로 스포츠 만화다.

초인적 영웅 되새겨 주는 스포츠 만화들

스포츠 소설, 스포츠 영화, 이런 걸로 당신은 몇 편의 제목을 댈 수 있나? 나는 앉은 자리에서 스포츠 만화 100편의 제목을 댈 수 있다. 만화계에서 스포츠 만화는 주류 중의 주류 장르다. 만화는 내게 승부의 짜릿함을 만끽하고, 경기의 내면을 더 깊이 파고들고, 어느 순간 스스로 선수가 된 양 경기장을 뛰어다니게 만든다.

이번 올릭픽에도 몇몇 초인적인 선수가 등장해 ‘거의 만화 수준인데’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수영에서 8개의 금메달을 따며 거의 모든 종목에서 신기록을 세운 마이크 펠프스의 돌핀 킥을 보면 스포츠 만화가 아니라 해양 판타지 만화 『원피스』나 『수중기사』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는 잠영할 때 『아쿠아맨』의 초능력-물에서 산소를 분리해 쓸 수 있는 능력-을 몰래 쓰는 게 아닐까? 거기에 비하면 한국의 ‘마린 보이’ 박태환이나 일본 평영의 신화 기타지마 고스케는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인다. 나는 아다치 미쓰루의 수영 만화 『러프』를 원작으로 한 한·일 합작 드라마를 만들면서 두 수영 스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들과 삼·사각관계를 이룰 여자 주인공들은, 전혀 맥락 없이, 김연아와 아사다 미오다.

육상 100m와 2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는 난데없는 발언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나는 그를 보며 『슬램덩크』의 건방진 천재 서태웅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볼트는 왜 다른 자메이카 선수들처럼 미국의 스카우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느냐니까 “미국은 추워서 싫다”고 했다. 서태웅에게 왜 북산고등학교에 왔느냐니깐 “집에서 가까워서”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볼트는 아침으로 뭘 먹느냐는 질문에, 늦잠을 자서 아침은 거의 안 먹고 치킨 너깃을 즐겨 먹는다고 했다. 서태웅 역시 잠꾸러기로 유명하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경기 중 하나가 사이클 개인도로 경기였다. 박흥용의 『내 파란 세이버』는 하늘을 나는 쌕쌕이 대신 도로 위를 날아다니는 자전거 경주에 인생을 건 주인공이 나온다. 이번 대회에서는 88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한국 남녀 선수들이 이 부문에 출전하게 되었다. 나는 TV를 보면서 “날아라 쌕쌕이!”라고 응원하고 싶었는데, 대회 초반에 경기가 끝나고 가장 먼저 짐을 싸서 서울로 돌아왔다는 쓸쓸한 이야기만 들었다. 그래도 245㎞를 완주했다니 대단하다.

수영·마라톤에서는 여러 인간 승리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백혈병을 이기고 금메달을 딴 판데르베이덴도 대단하지만, 왼쪽 다리 없이 25명 중에서 16위를 차지한 남아공의 여자 선수 뒤 투아는 정말 감동의 덩어리였다. 나는 휠체어 농구를 그린 『리얼(Real)』을 펼쳐 들고 그 감동을 되새겼다.

『리얼』에는 휠체어 농구를 하는 선수들이 일반인과 농구 경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일반인 선수들은 번개처럼 달려드는 휠체어에 놀라 뒤로 나자빠진다. “위험하잖아!” “이건 우리 다리일 뿐이야!”

하루 안에 승부가 끝나는 여러 개인 종목과 달리 수십 명이 10여 일 동안 예선 경기를 통과해야 하는 구기 종목은 작은 리그 경기를 보는 듯한 재미가 더하다. 세계 최고의 팀을 차례로 격파해 간 한국 야구팀을 보면 온갖 불리함 속에서도 전승 우승에 도전해 가던 『공포의 외인구단』이 떠오른다.

물론 우승만이 지상의 목표는 아니다. 거기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 단 한번도 지지 않은 무패의 복서를 그린 만화 『제로』는 오히려 그 승리의 고독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점수제로 시시해져 버린 올림픽 복싱에서, 그 옛날 진짜 승부의 재미를 찾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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