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 협박’ 얼마나 심했기에 … 영장 통해 본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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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A 건설회사는 한 분양 대행업체를 통해 서울 시내에 건립한 상가와 아파트의 분양 광고를 냈다. 광고가 나간 당일 대행사엔 하루 1000여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들아 거기다 왜 광고 내냐”며 욕설과 함께 중앙·조선·동아에 광고를 내지 말라는 협박전화였다. 상담 전화 5대는 하루 종일 통화 중이었다. 정작 분양 문의 전화는 아예 받지 못했다. 결국 지난달 3일 A건설사는 부도가 났다. 건설 경기가 안 좋은 데다 협박전화 때문에 6~7월 분양을 못한 것이 부도 원인 중 하나였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부장 구본진)는 22일 인터넷 포털 다음에 ‘조중동폐간 국민캠페인’ 카페를 개설한 뒤 광고주 협박운동을 주도한 이태봉(40)씨의 구속영장에서 이 같은 피해 사례를 밝혔다. 이씨는 이 카페와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 게시판에 ▶소비재로 생활에 밀접한 업체 ▶광고 단가가 비싼 1면 및 전면광고 업체 ▶전날 숙제(협박 전화를 거는 일) 때 응대가 악질적인 업체라며 ‘집중 공략 리스트’를 작성해 올렸다.

이 명단에 포함된 B여행사에는 “당신 회사 같은 중소기업 따위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등의 협박 전화가 하루 70~80여 통 이어졌다. 여름 휴가철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이 회사 전화 상담업무는 거의 마비됐다. 이 여행사는 성수기인 5~8월 매출이 지난해 대비 101억원이나 줄었다. C여행사는 매출 손실로 과장급 이상이 전원 사직서를 제출했다. 회사는 구조 조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D비뇨기과로는 오전 8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전화가 걸려 왔다. 진료 시간이 끝난 후엔 원무과 직원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돼 자동으로 연결된 것이다. 이 병원은 환자들 수술 예약 전화를 받지 못해 2000만원의 손해를 봤다고 한다.

피해 업체들로 걸려온 전화 내용도 광고를 내지 말라는 권고 수준이 아니었다. 대부분 ‘×새끼’ ‘매국노’ ‘친일파’ ‘니네는 국민도 아니다’는 욕설과 협박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힌 9개 업체의 피해액만 4억9000여만원. 협박을 받고 광고를 중단하거나 취소한 업체는 220개에 달했다. 대부분 업체는 “네티즌의 보복이 두렵다”며 검찰 조사에 나오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정부가 반정부 성향의 언론사를 폐간시키기 위해 광고중단 압박을 하는 게 허용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 같은 행위는 일어나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들의 주장만 옳고 이에 반대하는 주장은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은 또 다른 권위주의의 표현이며 언론에 대한 부당한 압박”이라고 덧붙였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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