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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구들학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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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보스턴 출신 과학자로서 동양문화에 심취했던 퍼시벌 로웰은 일본 체류중이던 1883년 여름 조선 최초 견미(遣美)사절단의 안내역을 맡아 미국에 건너갔다.임무를 마친 로웰은 다시 일본에 돌아왔다가 사절단을 따라 조선을 방문,그해 겨울을 조선에서 보냈다.그후 로웰은 미국에 돌아가 1885년 자신의 조선체험을 책으로 펴냈다.『조선,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그것이다.
로웰의 책엔 당시 조선의 사회.문화.풍물이 다양하게 기록돼 있다.그중엔 온돌이란 신기한 난방법에 대한 기록도 있다.『그것은 겨울철 방안을 따뜻하게 하는 일종의 화로(火爐)역할을 한다.방밖엔 난로용 구멍이 있는데 이것을 아궁이라 부 른다.불을 때면 열기가 마치 벌집처럼 돼 있는 미로(迷路)를 따라 방바닥에 넓게 퍼진다.아이디어가 뛰어나며 통풍장치를 보충하면 훌륭한난방장치가 될 것이다.』 온돌은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 북부에 살던 부여족에 의해 고안됐다.중국 『구당서(舊唐書)』에 『고구려인들은 겨울에 구덩이를 길게 파고 밑에서 불을 때 따뜻함을 유지한다』고 기록돼 있다.4~5세기 백제에 전해지고 그후 통일신라.고려를 거치면서 소백산맥 이남에 전해졌으며,조선초기 남한전역에 보급됐다.
온돌의 원리는 열의 전도를 이용한 것이다.방고래를 통해 화기(火氣)를 보내 달궈진 구들이 방출한 열로 난방을 한다.방바닥을 고루 덥혀주기 때문에 습기가 차지 않고 화재에도 안전하다.
또 난방.취사를 함께 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온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문화적 요소다.온돌 아랫목은 오랫동안 한민족 생활문화의 필수공간이었다.온가족이 아랫목에 모여앉아 정을 나누는 것은 화목한 집안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필수요소였다.그러나 현대화의 물결은 우리에게서 아랫목 을 빼앗아갔다.구들 대신 시멘트바닥에 온수 파이프가 깔린 개량온돌이 등장하면서 아랫목 문화는 사라졌다.인류학자들은 한국인들이 집에 대한 포근함을 잃은 것은 아랫목 문화가 사라진 것과 관련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구들온돌을 지키자는 「구들학회」가 발족했다.전통온돌을 학문적으로 체계있게 정리,온돌 종주국으로서 자리를 지켜나가자는것이 설립 목적이다.우리 온돌문화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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