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문화] 흑인 연극 부활 '시험 무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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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케니 레온, 그가 과연 침체의 늪에 빠진 흑인 연극계를 되살릴 것인가.' 연극과 뮤지컬의 거리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가 48세의 한 흑인 연출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레온은 20년이 넘은 자신의 무대 경험과 역량을 한데 모은 작품을 오는 26일 브로드웨이에 처음 선보인다. 배우로 출발해 유능한 연출가로 이름을 굳힌 그가 이번에 로열극장에 올릴 작품은 '태양의 계절(A Raisin in the Sun)'. 1961년 영화, 89년 TV영화로 나와 인기를 끌었으며 연극무대에도 종종 올려지는 작품이다.

260만달러(약 31억원)라는 거금이 투입된 데다 브로드웨이 데뷔라는 점에서 레온의 어깨는 무척 무겁다.

브로드웨이의 연극인들은 이번 공연이 퇴조를 거듭해온 흑인 연극계의 부활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입을 모은다. 입장권 예매 수입이 이미 200만달러를 넘어선 만큼 대체로 성공을 점치는 분위기다. 뉴욕 타임스도 지난 15일자에서 레온을 "1960~70년대 전성기의 흑인 연극을 되살릴 재능을 가진 인물"로 표현했다.

미국의 흑인 극단들은 80년대 이후 영화 쪽으로 관객이 몰리면서 줄곧 퇴행길이었다.

기업 및 개인들의 기부금도 빠르게 감소했다. 한 때 명성을 날렸던 크로스로드 극장(뉴저지주 뉴브런즈윅)은 몇년째 새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필라델피아의 프리덤 극장이나 애틀랜타의 뉴조만디 극장 등은 관객 감소로 공연 횟수를 줄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레온은 지금껏 고향인 애틀랜타에 두 발을 딛고 보스턴.뉴욕.댈러스.밀워키.신시내티.새너제이.오리건 등 미국 전역의 유명 극장들과 손잡고 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연극은 물론 뮤지컬.TV 드라마로도 무대를 넓혀갔다. 94년 최고의 연출가로 애비상을 수상하는 등 묵직한 상도 많이 받았다. 지난해 9월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를 주목할 미국 남부 예술인 20명 중 하나로 꼽았다.

"언제나 다양성이란 화두를 잡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걸 빼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문화든 인종이든 스포츠든 종교든 다양하기 때문에 독창성이 돋보이는 것이지요."

'태양의 계절'은 65년 30대 중반의 나이로 요절한 작가 로레인 한스베리의 대표작으로, 흑인 가장이 거액의 보험금을 남기고 죽은 뒤 남은 가족들이 겪는 갈등과 사랑이 주제다.

흑인들이 백인 위주의 사회에서 어렵게 살고 있지만 자존심과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클라크 애틀랜타대학을 졸업한 뒤 연기 및 음악 전문 아카데미에서 9년간 경험을 쌓은 레온은 90년부터 10년 이상 미 동남부에서 가장 알아주는 얼라이언스 극장(애틀랜타)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2002년에'트루 컬러'라는 극단을 만들어 독립했는데, 코카콜라.델타항공.벨사우스 등 애틀랜타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기업들이 주요 후원자들이다.

그는 이번 브로드웨이 입성을 발판 삼아 내년엔 대형 뮤지컬을 만들 계획이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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