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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호황’ 인도 IT 성장 엔진 식어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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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인도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각광을 받은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2000년을 앞두고 ‘밀레니엄 버그’로 불렸던 컴퓨터의 연도 인식 오류 문제(Y2k)를 해결하는 데 풍부한 인도 IT 인력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인도의 주요 IT 기업은 글로벌 기업들이 발주하는 일감을 쓸어가면서 연평균 40% 이상의 고속 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그후 10년. 인도의 IT 산업도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인도의 IT 산업이 최근엔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20일 보도했다. 인도 IT 산업의 엔진이 식어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는 최대 시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 경제의 침체다. 인도의 대표적 IT 기업인 인포시스나 TCS, 와이프로 등은 IT 아웃소싱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다. 글로벌 기업들이 직접 처리하지 않는 전산작업을 대신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경제가 둔화하면 이런 일감도 줄 수밖에 없다.

와이프로의 지난 회계연도(3월 결산) 이익 증가율은 11.6%였다. 전년의 42.3%보다 크게 떨어진 것이다. TCS의 경우 2분기 순이익 증가율이 한 자릿수(4.9%)에 그쳤다. IT 산업의 성장세가 예전 같지 않다 보니 올해 인도의 경제성장률도 7%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 상승에 따른 긴축 정책이 시행되면 6%대로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삼성경제연구소).

둘째는 고임금과 인력 부족이다. 인도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2003년 이후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매년 10% 이상 올랐다. IT 업종의 임금 인상률은 17.2%(2007년)에 달했다. 임금이 오르다 보니 조건이 더 좋은 직장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많아 기업들이 쓸 만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인도에 진출한 한국 업체들 사이에선 “이렇게 5년만 가면 인도의 임금 수준이 한국과 같아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인도의 고임금은 동유럽과 필리핀 등을 경쟁 상대로 부상하게 했다. 독일의 전자업체 지멘스는 이미 2년 전 인도에 두었던 고객상담센터를 필리핀 마닐라로 옮겼다. 필리핀에서 쓰는 영어가 미국 고객들에게 더 친숙했고, 비용 면에서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인도에선 상담 직원의 이직률(월간)이 20%였지만 필리핀에선 2.5% 수준이라고 한다.

지멘스 북미사업부의 IT 전략 담당 책임자인 윌리엄 맥나마라는 “인도가 아직 비용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때 활발했던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도 부진하다. 올 상반기 벤처캐피털의 투자액은 전년보다 63%나 급감했다.

이런 위기 조짐이 나타나자 인도 기업들은 IBM이나 액센추어 같은 IT컨설팅 업체로 탈바꿈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아웃소싱에 의존하는 형태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정무섭 수석연구원은 “교육 체계와 기술 수준 등에서 인도의 IT 산업은 여전히 강점이 있다”며 “저임금의 이점이 남아 있는 동안 산업구조를 어떻게 고부가가치 위주로 전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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