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가는길>강원도 인제 오세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계곡물에는 과거와 현재,미래가 한데 엉켜있다.세속의 시간을 초월해서 「거기 그렇게 있는」 것이다.
백담계곡을 따라오르는 길에서도 나그네는 그런 상념(想念)에 잠겨본다.천년 전 누군가가 듣던 물소리나 지금 나그네가 듣고 있는 물소리나 무엇이 다를 것인가.내설악의 신록도 역시 그렇다. 나뭇잎들은 아기혀처럼 여리고,햇살은 어머니의 젖처럼 뿌려지고 있다.
계곡물 소리에 암자로 가는 길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오르는산길이 마치 금실좋은 부부처럼 계곡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적어도 깊은 산골로 들어서기 전인 영시암(永矢庵)까지는 산길과 계곡이 서로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는 것이다.
생육신(生六臣)중 한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머리를 깎고 출가한 오세암은 신라 선덕여왕 13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때는 관음암(觀音庵)이었는데 조선 인조 21년(1643년)에 설정(雪淨)스님이 암자를 중건하면서 오세암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이윽고 암자가 내려다보이는 고갯마루에서 땀을 들이는데 다람쥐가 나타나 합장을 한다.그러더니 탁발하는 스님처럼 공양거리를 달라고 다가선다.마침 입가심으로 가져온 땅콩을 보여주니 대뜸 나그네의 손바닥에 올라 냠냠 먹는 것이다.사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천진한 모습이다.
그렇다.천진함이야말로 오세암의 특징이 아닐 것인가.멀리 보이는 아이를 안은 것같은 포대화상바위도,법당 안의 오세동자도 천진함 그 자체다.그래서 법당이름을 천진관음보전(天眞觀音寶殿)이라 부른 것이다.
오세동자(五世童子)의 설화는 이렇다.설정스님은 어린 조카를 데리고 있었는데 하루는 겨우살이 준비를 위해 외지로 나가게 됐다. 떠나면서 스님은 주먹밥 몇 덩어리를 조카에게 주며 무서우면 법당으로 가서 관음보살님을 부르라고 했다.엄마같은 관음보살님이 보살펴줄 것이라고.그런데 다음날부터 폭설이 내려 산길이 막혀버리고 만 것이다.봄이 돼서야 산길이 트여 암자를 다시 찾게 됐는데 그때까지도 조카는 관음보살의 젖을 먹고 살아 있더라는 이야기다.그래서 설정스님은 관음보살님의 자비와 조카의 천진함을 기리기 위해 오세암으로 암자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가는길=백담계곡을 따라 영시암을 지난 뒤 첫 이정표쪽에서 왼편 산길로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백담사에서 걸어서 2시간반정도 걸린다.(전화 (0365)462-8135) 글=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