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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청년 이정준 ‘올림픽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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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네 번은 바라지도 않았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육상장인 국가체육장 직선주로를 꼭 세 번만 달려보고 싶었다.

허들 청년 이정준(24·안양시청·사진)의 바람은 100분의 4초 차로 무산됐다. 그는 19일 열린 육상 남자 110m 허들 2회전에서 한국신기록(13초55)으로 같은 조 8명 중 6위를 했다. 각 조 1~3위를 뺀 나머지 중 상위 4명에게 주어지는 준결승 진출권에 기대를 걸었다. 커트라인은 16위인 사무엘 코코 빌로앙(프랑스·13초51). 18위 이정준의 베이징 올림픽은 그렇게 끝났다.

이정준은 “이번 대회에서 좌절과 희망을 모두 느꼈다”고 했다. 그가 느낀 것을 그의 목소리로 재구성했다.

◇좌절=1회전(18일)에서 주눅이 많이 들었다. 아시안게임(2006년 도하)은 가봤지만 올림픽은 처음이다. 그렇게 많은 관중(9만1000석) 앞에서 뛰어본 적이 없다. 정말 떨렸다. 며칠 전 웨이트 트레이닝 때 삐끗한 허리도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한국 육상선수 중 트랙경기 출전 선수는 나 혼자. 한국에도 육상 선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1회전을 꼭 통과해야 하는 이유였다.

2회전을 앞두고 작전을 짰다. 세계기록(12초87) 보유자 다이런 로블레스(쿠바) 옆 레인에서 뛰게 된 건 행운이었다. 예선이니까 로블레스는 전력질주 대신 13초1~2 정도 뛸 걸로 봤다. 최대한 붙어가기로 했다. 2회전을 위해 트랙에 섰는데 1회전과 달리 안 떨렸다. 그래서 큰 경기를 자주 뛰어봐야 하나 보다. 2회전은 스타트(출발반응시간 0.138초, 8명 중 1위)가 정말 좋았다. 한국신기록 수립과 준결승 진출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섯 번째 허들에서 실수했다. 손과 발이 허들에 닿아 흔들렸다. 아차 싶었다. 2등으로 나가다 뒤로 밀렸다. 한국신기록인데도 탈락이었다.

실수만 없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한국 신기록으로도 준결승에 못 간다니. 세계의 벽은 정말 높다.

◇희망=지난해 중국, 올해 일본 전지훈련에서 많이 배웠고 많이 늘었다. 그런데 이번 대회 이틀(18, 19일)간 느낀 것도 만만치 않다.

2회전에서 스타트도 좋았고 중반까지는 2위였는데 왜 밀렸을까. 실수도 있었지만 그간 너무나 기술에만 의존했다. 마지막 허들을 넘은 뒤 스피드에서 밀렸다. 110m 허들도 단거리경기인데 스피드 훈련에 소홀했다. 스피드 훈련에 신경 써야겠다.

이번 대회의 최대 소득은 2회전 진출도, 한국신기록도 아니다. 그건 자신감이다. 지금껏 스타트라인에 서는 것 자체가 두려웠는데 이젠 해볼 만하다고 느낀다. 12초대에 뛰는 류샹(중국)이나 로블레스 같은 톱 그룹에는 들어갈 수 없겠지만 13초 초반을 뛰는 그 다음 그룹에는 갈 수 있을 것 같다.

막연했던 목표도 확실히 했다. 일단 13초4대 진입이다. 올해 0.1초(한국기록 기준 13초67→13초55)를 단축한 것처럼 내년에도 꼭 0.1초를 단축하겠다. 그 다음 목표는 세계대회 결선 진출이다. 그러려면 적어도 13초2대를 뛰어야 한다. 3년 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까지는 꼭 간다. 13초2. 그래서 그때는 결승 스타트라인에 서는 8명 안에 들겠다.

◇결혼=다들 (이)연경(여자친구, 여자 100m허들 한국기록 보유자)이와의 결혼 얘기를 물어보는데, 하루라도 빨리 하고 싶다. 하지만 올해는 연경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려울 것 같다. 연경이, 그리고 양쪽 어른들과 좀 더 상의를 해야겠다.

베이징=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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