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내빈(外華內貧)’.
상반기 상장회사의 실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렇다. 앞으로는 남는 장사를 했지만 뒤로는 겨우 본전치기였다는 얘기다. 장사는 잘했으나 예상치 못한 환율 상승이란 복병 때문에 입은 손실이 이익을 다 까먹었기 때문이다. 특히 코스닥 상장회사의 피해가 컸다. 앞으로도 환율은 오름세를 탈 공산이 커 피해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 영업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20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12월 결산법인 579개사가 상반기 올린 매출은 440조2627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3.9% 늘었다. 영업이익도 39조2894억원으로 23.9%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순이익은 1% 증가에 그쳤다.
◇고 환율에 헛심만=올 상반기 상장회사는 장사를 잘했다. 거래소시장의 12개 금융회사를 제외한 567개 회사는 401조원어치를 팔아 32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1000원어치를 팔아 81원씩 남긴 셈이다. 지난해에는 69원 남긴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환율이 발목을 잡았다. 많은 기업이 환차손을 입은 데다 환차손을 피하려고 가입한 파생상품이 되레 손실을 키웠다. 대우조선해양은 손실액이 무려 1485억원에 달했다. 그나마 이익이 줄지 않은 건 전기전자와 조선·자동차·철강 업종이 워낙 선전했기 때문이다.
IT의 경우 반도체 부문은 부진했지만 디스플레이와 휴대전화 매출이 크게 늘어난 덕분에 영업이익이 139%나 증가했다. 자동차와 조선업이 속한 운수장비(61%)와 철강금속업종(54.4%)도 영업이익 증가율이 높았다. 반면 경쟁이 심해진 통신업은 영업이익이 21% 줄었고 원재료 가격 상승을 고스란히 떠안은 전기가스업종은 아예 적자를 냈다.
◇희비 엇갈린 대기업과 코스닥=그나마 10대 그룹은 체면치레를 했다. 거래소에 상장된 10대 그룹 계열사 총 매출액은 201조원으로 21.4% 늘었다. 순이익도 15조3000억원으로 39% 증가했다. 특히 영업이익과 순익이 320%와 248%씩 늘어난 LG그룹의 선전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주력 기업이 기름 값에 영향을 많이 받는 그룹의 실적은 나빠졌다. 한진그룹은 영업이익이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영업이익도 5% 가까이 줄었다. SK그룹 역시 매출은 25% 늘었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크게 줄었다.
코스닥 기업의 성적은 더 나빴다. 12월 결산 897개 기업의 전체 매출액은 36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7.7% 늘었고 영업이익도 25.3% 늘었다. 반면 순이익은 1700억원으로 78.4% 줄었다. 파생상품으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거래소 기업보다 더 컸기 때문이다. 홈쇼핑 등 방송서비스 업종과 인터넷 포털이 속한 IT 소프트웨어업종의 실적이 호조를 보였다. 반면 IT부품·반도체·통신장비 등의 IT 하드웨어 업종은 전반적으로 실적이 악화됐다.
최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