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홀로 약진…‘아이칸 백신’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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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KT&G가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20일 KT&G는 전날보다 1500원(1.64%) 오른 9만3100원을 기록했다. 장중 한때 9만3400원까지 올랐다. 5거래일 연속 상승세다.

최근 증시 약세에도 불구하고 KT&G가 이처럼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많다. 우선 성적표가 좋다. KT&G는 올 2분기 263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늘었다. 경기 침체와 환율 상승으로 많은 기업이 고전한 것과는 딴판이다.

성장성도 갖췄다.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담배 시장을 넘어 중동·중앙아시아 등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로 홍삼 시장은 날로 성장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성장 속도가 연평균 16%에 이른다. 여기에 14일 발표한 195만 주(1734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결정도 주가를 밀어올렸다. 대우증권 백운목 연구원은 “KT&G는 최근 주식 시장의 악재로 작용하는 물가 상승, 자산 가치 하락, 환율 상승, 경기 하락과 관계없는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KT&G의 본격적인 ‘질주’는 2006년 ‘그 사건’으로 잉태됐다고 해석하는 이가 많다. ‘그 사건’은 2006년 초,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경영 참여가 목적이라며 KT&G의 지분 6.59%를 사들인 것을 일컫는다. ‘그 사건’ 이후 주가가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주당순이익(EPS)·자기자본이익률(ROE) 등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칼 아이칸 이전과 이후=아이칸은 주가 부양을 위해 한국인삼공사 등을 상장하거나 매각하고 유휴 부동산을 처분할 것을 요구했다. 당장 회사가 뒤집혔다. KT&G는 2002년 민영화된 이후 지분이 분산되면서 뚜렷한 주주가 없었다. 기업은행·우리사주조합을 합쳐 봐야 지분율이 12%에도 못 미친다. 아이칸 측이 다른 외국인과 연대해 KT&G의 현 경영진에 대항한다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KT&G의 경영진은 당초보다 기업설명회(IR)를 앞당기고 주주들을 찾아다니며 우호 지분을 끌어모았다. 그 결과 그해 3월에 열린 주주총회는 KT&G 측의 승리로 끝났다. 이어 KT&G는 2008년까지 2조8000억원 규모의 이익을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KT&G는 실제 달라졌다. 이른바 ‘주주를 위한 경영’이 본격화했다. 2005년 주당 1700원이었던 배당금을 2006년 2400원으로 40% 이상으로 늘렸다. 300만 주에 그쳤던 자사주 소각은 1500만 주로 늘었다. 순이익은 꾸준히 느는데 주식 수가 줄어드니 3000원대에 머물던 주당 순이익은 2006년 4500원 선에 육박하게 됐다. 자기자본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굴렸느냐를 의미하는 자기자본 이익률은 2005년 15%에서 2006년 20%대로 높아졌다.

한국투자증권 김시우 연구원은 “아이칸 사태 이후 회사 측이 주주 이익 환원 정책을 통한 지배구조의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며 “이것이 기업 성과와 실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기업 가치가 커지자 주가도 화답했다. 2006년 초부터 20일까지 2년여간 코스피지수가 38% 오르는 동안 KT&G의 주가는 77% 상승했다. 증시가 약세를 보인 올해는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연초 이후 코스피지수는 19% 하락했지만 KT&G는 17% 상승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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