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시모토 비전'보고서 새삼 주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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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 자민당 행정개혁 추진본부의 일본 중앙정부 개편안 골격이밝혀지면서 자민당 총재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의 「하시모토 비전」 보고서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본지 5월11일자 8면 참조).
「하시모토 비전」은 일본 자민당과 대장성.통산성등의 정책 두뇌들이 21세기의 일본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종합 정책보고서다. 행정.재정 개혁방안을 중심으로 규제완화.사회복지.교육 분야를 모두 망라하고 있다 (표참조).
하시모토 총리는 올 연말까지 보고서의 각론 부분을 보강,차기총선의 공약으로 내걸 예정이다.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으로서도 당연히 21세기의 일본이 어떻게 변할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시모토 비전」에 대한 일본 국내의 시각은 대체로 세가지 방향이다.
첫째는 보고서가 펼쳐보인 국가 비전에 적극 찬성하는 쪽이다.
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무너지고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끝나면서 일대 전환기에 돌입한 「일본주식회사」의 미래상을 정치지도자가 책임있게 설계했다는 것이다.특히 국가 행정기능을 7개 분야로 축소.재편한다는 계획은 곧 관료사회에 대한 일대 수술이라는 점에서 재계와 일반 국민의 환영을 받고 있다.
비록 구체적이지는 못할 망정 국민에게 꿈을 심어주려는 노력을보인 측면을 높이 평가하는 이도 있다.
둘째로 「총선 공약용」이라는 점을 들어 비판하는 시각이 있다.정치가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취급받기는 일본도한국과 마찬가지다.
지금으로서는 일본의 다음 중의원 해산.총선거가 올 연말 또는내년초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번 「하시모토 비전」도 구체적 각론은 연말께 나올 예정이다.정치인이 선거를 의식하는 것은 당연하다지만 이번 보고서는 집단자위권 문제등 매우 중요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은 민감한 사안은 되도록 피하면서 장미빛 미래를 색칠하는데 치 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총론에 비해 각론이 약하고,특히 재원확보 방안이 불분명하다는비판은 한국의 경우와 닮은 꼴이다.
셋째로 관료들의 자구책이라는 지적이 있다.
전통적인 관료우위 사회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시점에서 관료들이 하시모토 총리에게 국가의 미래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대신 발표하게 한 「합작품」이라는 비판이다.
그러니 무슨 실효가 있겠느냐는 반론이다.
어쨌든 「하시모토 비전」의 기본인식은 『21세기는 대(大)경쟁 시대』라는 구호로 대변된다.
이 구호는 지난해 11월 통산성이 자민당 총재선거를 준비하던하시모토(당시 통산상)에게 제공한 정책보고서의 대전제와 똑같다. 대장성도 보고서 작성과정에서 총리 관저를 들락거리며 재정개혁 부문에 대한 아이디어를 집중적으로 제공했다.
그같은 과정을 거쳐 작성된 보고서에서▶일본 경제계의 최대 현안인 지주(持株)회사 설립 허용문제▶거대기업 일본전신전화(NTT) 분할문제 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이 넘어간 것은 역시 관료들의 입김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국가지도자가 당.정의 정책두뇌들을 활용해 21세기의 비전을 만들어 내놓고 선거를 통해 평가받으려는 자세는 높이 살만하다.
하시모토 총리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당면한 주택금융전문회사(住專) 악성채무 처리문제 외에 7월 만료되는 미.일 반도체협정 후속조치,9월 임시국회에서의 소비세인상 논란,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분담금문제 등 난제가 첩첩이 쌓여 있 다.
「하시모토 비전」이 과연 현실로 연결될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도쿄=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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