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주는 13일 미국과의 첫 경기에 등판해 홈런 1개를 내주는 등 3실점을 했다. 아웃카운트는 한 개도 잡지 못했다. 다행히 8대 7로 재역전승했지만 한국이 패했더라면 한기주는 얼굴도 들지 못할 뻔 했다. 16일 일본과의 경기에서도 3점 차 리드 상황(5대 2)인 9회 말 등판했지만 선두 타자 아라이 다카히로에게 3루타를 맞은 데 이어 실책으로 1실점한 후 다시 무라타 슈이치에게 2루타를 내주고 무사 2, 3루에서 강판당했다. 두 경기를 치르며 한기주의 방어율은 99.9였다. 평균 자책점은 무한대.
18일엔 대만 전에서 첫 아웃카운트를 잡았지만 6회 말 2점을 내주며 한때 동점을 허용하기도 했다. 피 말리는 접전 끝에 대만전에서 승리 투수가 됐지만 한기주를 바라보는 네티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주요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란과 커뮤니티 게시판, 개인 블로그 등에는 한기주의 방어율을 빗대 가수 배일호가 부른 ‘속이 꽉찬 남자 99.9’와 ‘은하철도 999’라는 별명이 잇따라 올라왔다.
또 한기주가 등판했던 미국전, 일본전, 대만전이 아슬아슬하게 역전승을 거두자 ‘반전을 꿈꾸는 남자 한기주’ ‘반전 소설’ ‘끝까지 안심할 수 없게 만드는 시청률 메이커’ 등의 껄끄러운 댓글들도 줄을 이었다. 대만전을 중계한 MBC 야구 해설팀의 “진짜 드라마다. 감독 김경문, 주연 한기주” 발언도 네티즌의 ‘한기주 놀리기’를 더욱 부채질했다.
김경문 감독의 ‘한기주 선택’은 불가피하다. 투수 1명이라도 빠지면 전체적인 투수 운영이 어렵다. 김 감독은 “한기주를 기용하지 못하면 다른 투수들의 체력 소모가 커져 4강 토너먼트에서 투수력을 100% 가동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한기주에 대한 신임 역시 두텁다. 김 감독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기주는 대표팀에서 가장 빠른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 “그동안 떨어졌던 자신감을 찾아주기 위해 올렸다” “앞으로 접전 상황에선 쓰기 힘들겠지만 쓸 수 있는 경기가 있다면 쓰겠다”고 말했다.
한기주의 ‘99.9 방어율’이 도마 위에 오르자 일부 네티즌 사이에선 ‘한기주 기(氣) 살리기’운동도 펼쳐졌다. 올해 3년차인 한기주는 150km 직구를 앞세워 방어율 1.69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20대 초반의 전도 유망한 차세대 주자라는 것. 고개를 숙이며 마운드를 내려오는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마음 속으로 축쳐진 어깨의 한기주에게 화이팅의 힘을 불어넣고 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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