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地圖>문학 15."실천문학"의 문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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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80년 초봄,아직 그 뜨거웠던「서울의 봄」조차 찾아오지 않았을 무렵,변화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그 변화가 초래할지도 모를 어떤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뒤숭숭하던 무렵,서점가에는 『실천문학』(이하『실천』)이라는 이름의 새 문학지가 선보였다.빨강에 가까운 주홍색 표지에 굵은 고딕체로 쓴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그것은 식민지시대의 『문장』이래 굳어져온 전통 문학지의 포맷 전체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70년대 이후 각기 인문주의적 교양과 현실참여론을 대표해온 『문학과 지성』과 『창작과 비평』의 서로간 「견제와 균형」을 통한 절묘한 「현상유지정책」에 대해서도 하나의 도전이었다.
『실천』이 잡지와 단행본을 결합해 기동성 있는 부정기간행물,이른바 무크라는 형태로 출간된 것 또한 이 신생 잡지의 성격과운명을 예감케 했다.한마디로 그것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우리 문학의 야전사령부를 자임한 선언이었다.
책머리에 무단(舞丹)이라는 시인이 『…적이여 가장 무서운 적인 동지여 그리고 시인이여/눈 떠라 온갖 거짓 소용돌이치는 치맛자락 씻어버려라』고 외치는「벽시」를 썼다.당연히 그 시는 온전치 못했다.시 중간에 난데없이 고은(高銀)소설집 에 대한 3줄짜리 광고가 박혀 있는데,아무리 시대에 둔감한 이라도 그 정도면 무단이 누구인지,왜 거기에 그런 돌출광고가 끼어 들었는지알 수 있었다.『실천』의 창간을 주도한 이가 바로 고은이었고,그때 그는 서슬퍼런 유신시절에 창립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였다.고은이 그 생래의 활기로 잡지의 탄생을 이끌어냈다면 소설가박태순(朴泰洵)은 처음 도서출판 전 애원에서 시작하여 실천문학사가 독립(대표 朴秉瑞)한 이후에도 실제적인 편집권을 행사하며초기 기틀을 잡아나갔 다.그는 가령 우리나라 최초로 팔레스티나시인들의 민족해방 시편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민중의 최전선에서새시대의 문학운동을 실천한다』는 편집이념을 「실천」하고자 애썼다. 『실천』에는 1982년 제3호부터 신인의 작품이 실리기 시작했다.그때 박선욱과 김수열 두 사람이 시인으로 등단했다.그들이 각기 5.18의 광주와 4.3의 제주 출신이라는 것도 우연치고는 자못 상징적이다.
『실천』은 1984년 제5호로서 무크지 시대를 끝낸다.작가 이문구(李文求)와 송기원(宋基元)이 경영의 전면에 나서고 난 직후의 일이다.힘겨운 줄다리기를 통해 계간지로 등록하는 데 성공한 『실천』은 이후 많은 신인들을 배출하는데,『 실천』을 통해 등단한 문인들의 작품 성향은 다른 잡지 출신들과는 뚜렷하게구분된다.
김남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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