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항하는제1야당>上.DJ長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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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는 요즘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5월 들어서는 당사 총재실보다 아태재단 사무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다.9일에는 대변인을 통해 『정국의 가닥이 잡힐 때까지 당초 계획했던 지방으로의 「대화여행」도 연기하 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정동채(鄭東采)비서실장은 8일 『요즘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다』며 『고관절 수술을 위해 계획했던 미국행도 유동적』이라고 전했다. 말할 것도 없이 4.11총선의 부진때문이다.특히 압승을 장담했던 수도권에서의 패배가 뼈아프다.金총재는 대선에서는못이겼지만 역대총선에서는 항상 자신의 당이 기대밖의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해온게 전례였다.전국을 2백개이상의 개별 선 거구로 나누어 치르게 되는 국회의원선거야말로 고정 지지표의 위력을한껏 떨칠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런 무대,특히 호남고정표가 탄탄한 수도권에서 예상밖 부진을보이자 국민회의 내부는 당혹.착잡.번민이 관통하고 있다.대통령선거는 「호남표+α」의 싸움인데 이번 총선에서 그나마 「집토끼」조차도 흔들리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 이다.
이렇게 되자 대통령도전 4수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당내 일부에서 조차 金총재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논의가 은밀하게 나오고 있다.金총재의 장고는 뭔가 정국을 돌파하고 주도권을 잡을 방책을 마련하는 휴지기로 봐야 한다고 측근들은 말 한다.
金총재가 침묵하는 가운데 의원들의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고 있다.『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는게 최대의 과제』라고 이구동성이다.
우선 대두되는 것은 지역.정책을 뛰어넘는 세력연대론이다.자민련과의 연대를 의미한다.「선(先)정권교체,후(後)현안타결」방식이라는 구체성도 갖추고 있다.
야권통합논의의 공개화 주장도 있다.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한 출구 모색론이다.전당대회 개최와 경선에 의한 지도부 재구성론도 제기된다.외부와의 연대에 앞서 내부 체제정비를 강조하는 쪽이다. 그러나 金총재는 김종필(金鍾泌)자민련총재와의 연대를 꾀해야하는 현실에 매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서로 물과 기름의 사이로 지난 30년간 다른 궤적의 정치역정을 걸어와 권력의 공유라는 공동의 이해를 제외한다면 연대할 수 없는 처지기때문이다.설령 현실에 밀려 연대한다 하더라도 국민이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가 金총재에겐 큰 부담이다.
일부 당선자들은 익명을 전제하고 「총재 1.5선 후퇴론」도 꺼냈다.이들은 『총재가 뒤로 빠져 있는게 오히려 총재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金총재 스스로도 당직자중한사람이 원외인 총재를 대행한다는 구상을 한 때 검토했으나 측근들의 반발로 흐지부지됐다.
수도권의 한 초선 당선자는 상황을 이렇게 압축했다.『지상목표는 수평적 정권교체다.상황에 따라 「김대중총재를 중심으로 한 정권교체」도 있을 수 있다.경직된 사고를 유연하게 하는게 최우선 과제다.』 말하자면 金총재 대신 제3의 인물을 내 세우자는것이다.그 적격자로 조순(趙淳)서울시장이 거명되기도 한다.
호남권의 한 재선의원은 이렇게 말했다.『개원협상에서 여권 프리미엄을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도록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의 변화다.과거의 전략과 방법론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변화없이 승리없다.』 제1야당의 고민은 한국정치의 고민이기도 하다.이번 총선 결과는 제1야당에 3당합당 직후와도 같은 막막함을 안겨주었다.장고에 들어간 金총재가 이 고민을 어디서부터 풀어나갈지,총선후 정국은 거기서부터본격 전개될 전망이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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