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사임 소식이 나온 뒤 파키스탄 북부 라호르의 변호사들이 18일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호하며 춤추고 있다. 무샤라프는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익을 해치는 탄핵 공방을 피하기 위해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1999년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8년10개월 만이다. [라호르 AP=연합뉴스]
무샤라프는 군인의 길을 선택했다. 18세 때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64년 포병장교로 임관했다. 91년 장성으로 진급했고 중장 시절이던 98년 당시 총리였던 나와즈 샤리프의 신임을 얻어 선배들을 제치고 참모총장에 올랐다.
그가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하게 된 계기는 99년 인도와의 카르길 분쟁이었다. 샤리프 총리는 양국 군인 4500여 명이 희생된 책임을 물어 그를 해임하려 했다. 스리랑카에서 돌아오는 무샤라프가 탄 비행기의 착륙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무샤라프를 지지하는 군 장성들은 샤리프를 체포하고 비행기를 파키스탄 땅에 착륙시켰다. AFP 통신은 당시 무샤라프의 비행기에는 7분 분량의 연료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2007년 10월 야당의 보이콧 속에 의회에 의해 대통령으로 재선출됐다. 하지만 군인 신분으로 출마한 것 때문에 후보 자격에 대한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한 달 뒤 다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사실상의 계엄 통치를 시작했다. 연임을 반대하는 대법원장을 해임하고 정적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무샤라프의 철권 정치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월부터다. 지난해 말 암살된 부토에 대한 동정표가 야당으로 몰리면서 총선에서 크게 패한 것이다. 파키스탄인민당(PPP) 등 집권 연정 세력은 탄핵 카드를 꺼내 들고 그를 코너로 몰았고, 버티던 무샤라프는 결국 18일 사임을 발표했다.
무샤라프는 재임 기간 세 번의 암살 위기를 넘겼다. 미국을 도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 탓에 알카에다의 주 목표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무샤라프는 평소 나폴레옹과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을 자신의 역할 모델로 꼽곤 했다. 둘 다 ‘불굴의 의지’로 유명한 지도자다. 하지만 군 장성 출신의 정치평론가 탈라트 마수드는 “모든 독재자는 자신을 구세주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없으면 곧 나라가 무너질 거라고 생각한다”며 무샤라프의 ‘착각’을 비꼬았다.
김한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