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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창조적 기부는 기업·빈곤층 살리는 ‘윈윈 나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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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의학 박사 1호인 한의학계 원로 류근철(82)씨가 KAIST에 578억원어치의 부동산과 골동품을 기증했다. 국내 개인 기부 사상 최고액이다. 2000년대 이후 개인·기업 기부는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개인 기부는 2003년 277억원에서 2007년 422억원으로, 기업은 2003년 843억원에서 2007년 1814억원으로 증가했다”고 18일 밝혔다.

◇기부의 유래와 가치=기부는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돈이나 물건 등을 내놓는 행위를 말한다.

상류층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서구의 전통으로 보지만 우리 민족 역시 품앗이·향악·계·두레 등 마을 단위의 조직적인 자선과 기부활동의 전통을 갖고 있다. 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면서 나눔문화가 퇴색했을 뿐이다.

기부는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도록 지탱하는 사회 안전망이다. 세율이 대체로 높은 유럽 국가보다 미국의 기부문화가 더 발달해 있다. 유럽에선 세금을 통해 복지를 해결한다. 반면 중앙정부의 사회복지 기능이 약한 미국에선 기부가 생활에 뿌리내린 상태다. 그럼에도 기부는 시장과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그늘진 곳을 감싸 안아 공동체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숭실대 정무성 교수는 “기부는 소득의 양극화로 생기는 사회 균열을 막고, 개인에게도 큰 행복감을 주는 원천이 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기부문화의 현주소=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누리 과장은 “2만원 미만 소액 기부자와 1000만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두 2000년대 이후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부 동기는 여전히 ‘동정심’이 많은 편이다. 정정호(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가 기부자들의 욕구를 조사한 결과 ‘동정심’이 ‘도덕적 의무와 책임감’ ‘사회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보다 중요한 기부 동기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원순 변호사는 “겨울이 기부 시즌인 것도 이 때문”이라며 “정기적 기부가 일상에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기부처도 제한돼 있다. 개인 고액 기부는 장학사업에 집중된다. 결연사업이나 복지시설 지원도 많다. 박 변호사는 “선진국에선 박물관·시민단체 지원, 환경 개선 등 사회구조를 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기부를 많이 한다”며 아쉬워했다.

◇‘착한 기업’이 뜬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2007년 한 해 기부액 중 기업 기부가 67.8%를 차지했다. 기업의 기부와 사회공헌 활동은 세계적 추세다. 최근에는 기업이 단순한 지원에서 벗어나 이윤을 얻어갈 수 있는 ‘창조적 자본주의’가 관심을 끌고 있다. 전통적인 기부의 의미를 넘어 시장의 힘을 활용해 빈곤과 불평등을 퇴치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의 도움으로 지난해 닻을 올린 ‘넥스트키 센터’ 프로젝트는 최근 70만 달러를 모금해 저소득층 주택 보급 사업을 시작했다.

◇기부문화 활성화시키려면=“자녀에게 많은 유산을 남기는 것은 독이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이 같은 가치관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고액 기부가 가족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기부가 뿌리내리려면 유산을 물려주는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마땅한 기부처가 많지 않은 것도 문제다. 부산대에 350억원을 낸 기부자가 반환 소송 중인 것이 한 예다. 기부문화의 투명성을 위해 비영리기관(NPO) 정보를 제공하는 ‘가이드스타’ 한국지부(www.guidestar.or.kr)도 생겼다. 또 기부금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부금 통합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미국은 ‘커뮤니티 파운데이션(Community Foundation)’의 모금액이 전체의 15%에 이른다. 정무성 교수는 “지역 연고를 갖는 재단이 많이 생기면 기부문화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소년기의 기부 참여는 가치관 교육에 효과적이다. 기부는 습관이다. 미국 자원활동단체인 인디펜던트섹터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봉사 경험이 있는 사람의 66.8%가 성인이 돼서도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반면 어린 시절 봉사 경험이 없는 사람은 성인이 돼 봉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33.2%에 불과했다. 박원순 변호사는 “재능이나 시간을 투자해 자원봉사하는 것도 훌륭한 기부 유형”이라며 “초·중·고교에서 이를 가르칠 나눔교육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길자 기자

※NIE 제작에 참여하신 분=▶중앙일보 NIE 교사 연구위원:김영민(명덕외고), 성태모(능주고) ▶중앙일보 NIE 강사 연구위원:이정연·심미향·정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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