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 기자의 영화? 영화!]‘영원한 오빠’ 롤링스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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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이로는 환갑을 한참 넘긴 60대 후반, 게다가 보톡스라고는 들어보지 못했는지 얼굴에 깊은 주름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스키니진이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차림입니다. 노래를 부르며 작은 엉덩이를 거침없이 흔들어대고, 허리까지 요염하게 돌립니다. 글머리부터 민망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노추도, 주접도, 생쇼도 전혀 아니거든요. 아무리 골라봐도 ‘섹시하다’가 맞는 말이겠더군요.

그 주어가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리더 믹 재거라면, 이들의 2006년 뉴욕 공연실황을 담은 2시간짜리 다큐 ‘샤인 어 라이트’(28일 개봉·사진)를 보신다면, 섹시함 운운하는 이 글이 이해가 가실 겁니다.

다큐를 만든 이는 마틴 스코세이지. 믹 재거와 비슷한 또래이자 설명이 필요없는 대단한 영화감독이지요. 무려 16대의 카메라로 찍어낸 화면은 이들의 공연을 객석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함께 즐기는 듯한 맛을 줍니다. 1류의 공연을 1류의 솜씨로 포착했습니다. 스코세이지는 영화 시작과 끝에 직접 얼굴을 내미는데, 그 방식이 재미있습니다. 공연에 앞서 믹 재거와 스코세이지가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도 흥미롭지요. 완벽주의자 스코세이지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믹 재거는 부르게 될 노래 순서를 공연 직전에야 넘겨주거든요. 공연이 최우선인 밴드로서는 다큐 촬영을 위한 카메라와 조명도 거추장스러울 따름이지요. 거장 감독 스코세이지는 이 다큐에서 자신의 역할이 롤링스톤스라는 왕비를 기꺼이 모시는 무수리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의 카리스마 역시 짚고 넘어가야죠. 동갑내기 믹 재거보다 한결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에 검은 아이라인(조니 뎁은 그를 본떠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을 그린 채, 마치 음악에 취한 듯 연주하는 모습이 일품입니다.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다고, 초대 손님으로 나온 블루스 연주자 버디 가이와 키스 리처드가 호흡을 맞추는 대목은 공연에 열기를 더합니다. 나름 섹시함이 장기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도 등장하는데, 믹 재거가 뿜어내는 섹시함에 비할 바가 아니더군요.

롤링스톤스가 결성된 게 1962년, 그러니까 이네들이 무대에서 놀아본 것이 얼추 반세기입니다. 그런 구력이 체력보다 한 수 위인듯 합니다. 흐느적거리는 무규칙 춤을 추면서 쉴 새 없이 무대 위를 헤집고 다니는 믹 재거의 방탕(!)한 퍼포먼스는 잘 짜인 집단 안무에 익숙한 어린 보이밴드들이 따라가기 힘든 매력을 보여줍니다.

공연실황 사이에 롤링스톤스의 젊은 시절 인터뷰 영상도 등장하는데, 미소년 시절의 이들에게 어느 기자가 묻습니다. “60대에는 뭘하고 있을까요?” “공연하고 있겠죠.” 스스로의 예언대로, 이들은 점잔을 빼고 물러나는 대신 딴따라 인생의 최전방에서 놀고 있습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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