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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 돌풍 … 해운업 삼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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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해 기준으로 매출액 360억 달러(약 36조원) 규모의 국내 해운업계는 20여 년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양강 체제였다. 하지만 올 상반기 STX팬오션이 급부상하면서 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바다 패권을 둘러싼 해운 3사의 각축전 양상이다.

해운업계의 지각변동을 몰고 온 만년 3위 STX팬오션은 올 상반기 사상최대 실적을 내며 매출액 1위인 한진해운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매출액 격차를 169억원으로 좁혔고, 영업이익은 오히려 2300억원 앞질렀다. STX팬오션 관계자는 “3사 중 벌크선 비중이 가장 높고 경쟁력이 뛰어나다. 벌크선 호황이 계속되고 있어 연말 해운업계 1위 등극이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의 선전은 철광석·석탄·곡물 같은 원자재를 실어나르는 벌크선의 호황 때문이다. 벌크선 운임을 나타내는 발틱건화물운임지수(BDI)는 올 상반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0% 상승했다.

STX팬오션은 1980년대까지 해운업계를 호령했던 범양상선이 모태다. 범양상선은 그러나 과다한 부실채무로 92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바다의 왕좌를 넘겼다. STX팬오션 관계자는 “2004년 STX그룹으로 편입되면서 중국과 인도 같은 신흥시장을 집중 공략했고, 이들의 원자재 수요 급증이 맞아 떨어지면서 급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공격적인 투자로 맞대응하고 있다. 2003년부터 해운업계의 1위로 군림해온 한진해운 관계자는 STX의 추격에 대해 “벌크선 호황 때문에 일시적으로 매출 격차가 좁혀진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운 경기를 비교적 덜 타는 컨테이너선 비중이 80%로 높아 안정적 매출구조를 갖추고 있어 쉽사리 1위 자리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진해운은 20% 선에 그치고 있는 벌크선 사업비중을 높이기 위해 4월 자회사인 거양해운을 흡수·합병했다. 이로써 100여 척인 벌크선이 250척까지 늘었다.

현대상선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이 회사는 98년 외환위기 이후 그룹의 자금사정이 악화, 핵심 사업부였던 자동차운반선 사업을 매각하면서 한진해운에 밀리기 시작했다. 회사 관계자는 “올 상반기에 운영 선박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경쟁사와 비슷한 700대가량으로 늘렸다”며 “인도나 호주 같은 신흥시장을 동시 다발적으로 공략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현대상선은 또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비중이 6 대 4 로, 가장 안정적인 선박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해운업 경기를 타지 않고 안정적 수입을 낼 수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췄다는 것이다. 한국선주협회 국제팀 양홍근 부장은 “해운업은 경기에 민감한 산업이어서 벌크선이나 컨테이선의 호황에 따라 3사의 희비가 엇갈리겠지만, 3사 경쟁 체제는 결과적으로 해운산업의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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