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역사] 49. 빛의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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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필자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빨간 마후라’의 한 장면.

내 멋대로 사는데 누가 뭐래! 거기 비켜 비켜! '여기 민주주의가 행차하신다던 시대'가 조용해졌다. 총칼을 든 계엄군이 곳곳에 깔리고, 그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는 금기사항이 거리에 나붙었다. 사람들은 어디로 가라는 것이냐며 소리치고 당황해 했다.

재벌 총수들이 붙들려가고, 사상범이라고 찍힌 사람들이 수감됐다. 최고회의라는 것이 군림하고 언론도 그들 마음대로 주물렀다. 완벽한 독재가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군사 독재라고 불렀다.

나는 작품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MBC가 그들 손아귀에 들어갔다. 사장은 박정희 장군의 대구사범 동기 동창인 황용주였다. 나한테 작품을 쓰라고 했다. 나는 '빨간 마후라'를 내밀었다. 신문 하단에 6단짜리 광고가 나갔다. 후원자는 락희유지였고, 주제가는 '강릉아가씨'였으며, 무대는 강릉 11전투비행단이었다.

한국전쟁 때 출격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무사 귀환을 갈망하는 강릉아가씨들의 순정을 그린 것이다. 공군에서 김경태 대위가 나와 작품을 검열했다. 한 번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장안의 인기프로가 됐다. 대구.강릉.수원.김포 등으로 시찰을 다니면서 얻은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대구기지에서 만난 유치곤 대령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출격 횟수는 200회를 넘었다.

모두 좋아했다. 신상옥 감독이 영화화하겠다고 나섰다. 500만환을 달라고 했더니 그는 망설이지 않고 내주었다. 아내는 "이젠 살았어요"라며 울먹였다. 그 정도면 변두리집 서너채 값은 된다고 했다. 나는 즉시 각색에 들어갔다.

성북동 우리집 아래쪽에 공군의 마종인 대령이 살고 있었다. 우리 집사람과 마대령 부인이 춘천여고 동기 동창이란다. 방송극을 쓸 때부터 마대령한테 배웠다. 그도 한국전쟁에 참전한 우수한 조종사였다. 참모총장감이라고들 했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자 신상옥 감독이 "주제가를 좀 신나는 것으로 바꿨으면 좋겠는데…"라고 했다. 명동거리를 걷다가 문득 가사가 떠올랐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 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아가씨야 내 마음 믿지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찻집에 들어갔다. 담뱃갑 종이에 미친 듯이 적었다. 신감독은 이 글의 작곡을 세 사람에게 의뢰했다. 어느 날 밤에 전화가 왔다.

"들어보세요.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오늘날의 '빨간 마후라' 주제가다. 황문평이 작곡했다.

당시 장성환 공군 참모총장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썼다고 못마땅해 했으나, 차장 장지량 장군이 설득하고 밀고 나가 촬영 후원도 해주었다고 한다.

명보극장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때 나도 기분이 좋았다. 이 영화는 해외로 팔려갔다. 대만에 판 것이 동남아 일대로 퍼져 대단한 흥행 성과를 올렸다는 후문이다.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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