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부패 방지에 온 세계가 힘을 모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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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정부는 94년 4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미국 기업들이 뇌물 공세를 펼치는 외국 기업에 4백50억달러 상당의 계약을 빼앗긴,1백건에 이르는 사례를 기록해놓고 있다.
잘 알려진 바대로 미국 기업들은 대외부패방지법에 의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은밀한 거래를 할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받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오는 12월 세계무역기구(WTO)발족1주년 준비 모임이 있었다.그 자리에서 미국이 정부 발주사업에뇌물 수수를 불법화하는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했다.
몇몇 동남아 국가 대표들은 마치 강물을 거꾸로 흐르게 하자는말을 들은 것처럼 충격을 받고 즉각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이 문제로 떠들어대는 것은 저 혼자 경건한 체하는 전형적인 위선자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십상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매 우 어려운 주제다.뇌물이 판을 치는 까닭은 타락과 무관심 때문이다.일부 정부는 그들의 친구와 친지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는 동안 먼 산만쳐다본다.또 어떤 정부는 돈봉투가 자국 내에서 오가지 않을 경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국중 절반 가량의 나라에서는 뇌물 수수가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궤변론자나 악한들은 아마 이러한 관료주의적 부패가 세계경제를움직이는 현실인 이상 이를 수용하느냐,조류에 뒤져가느냐가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할 지 모른다.그러나 이 문제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2차대전중 많은 사람이 무엇이 옳은 것이냐를 두고 피를 흘렸다.그런데 지금 2차대전과 뒤이은 냉전의 승리로 얻어낸 현 체제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부패가 갈기갈기 찢어놓아도 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대다수 근면한 사람들은 임 금 노예처럼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만약 아직 투표가 허용되고 있는 한국이나 인도.러시아같은 나라 국민들이 게임에 부정이 개입했다고 결론지을 경우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상대적인 정치적 자유와 평화는 큰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정치적 냉소주의자들은 문제는 민주주의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그들은 꼬리를 무는 부패사건으로 정치적 혼돈을겪고 있는 위 나라들이 언론과 사법부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민주주의 국가임에 주목할 것이다.아시아의 가부장 적 독재 국가나 중국 등에서는 그러한 혼란이 존재하지 않는다.
범세계적 부패방지법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한국의 두 전직대통령의 시련이 아시아의 다른 독재자들에게 권좌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자극제가 될 것 같지도 않다.그러나 공직자들의 부패를 뿌리뽑으려는 유권자들의 의식을 크게 제고시켰다고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한국인들의 이러한 행동은 부패가 유독아시아의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부패는 어떤 체제의 고인 물에서 발견되는 찌꺼기인 것이다.
냉전에서의 승리는 커다란 업적이다.세계의 주민들은 부패라는 저질의 생활보다 더 나은 미래를 누릴 자격이 있다.
[정리=양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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