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봇물 터진 “도심 육교 없애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대구시 비산동 새길시장 앞 횡단보도를 주민들이 건너가고 있다. 이곳에는 육교가 있었지만(왼쪽 사진) 시민의 불편을 이유로 지난 6월 구청이 철거했다. [사진=권동준 인턴기자]

“횡단보도가 생겨 얼마나 편한지 몰라. 무단횡단을 안 하니 사고 우려도 없지….”

대구시 비산동 주민 최진경(73)씨의 말이다. 최씨는 집 인근의 서부시장 앞 육교를 통해 도로를 건너다녔다. 그러나 최근 구청이 육교를 철거하고 횡단보도를 설치하면서 그동안 겪던 불편이 사라졌다. 그는 “다리가 아파 육교를 오르내리기가 정말 힘들었다”며 “안전하고 편하게 다닐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도심에 설치된 육교를 철거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육교 없애라”=대구 서구는 비산동의 서부시장과 새길시장 앞 육교를 6월 23일 철거했다. 1984년 설치된 두 육교는 시장을 오가는 주민이 주로 이용해왔다. 하지만 이 육교를 철거하라는 요구가 거세지면서 구청이 의견 수렴에 나섰다. 서구는 지난 3월 육교 주변 주민 1353명을 상대로 철거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조사결과 96%가 찬성했다. 대구경찰청과 횡단보도 설치 협의도 순조롭게 진행돼 3개월 만에 두 육교를 철거했다.

서구는 평리4동의 평리육교도 철거할 방침이다. 구청은 이달 말까지 주민 설문조사를 하고 대구경찰청과 협의를 거쳐 연말까지 철거한다는 계획이다. 류한국 부구청장은 “이제 노약자의 입장에서 교통정책을 펼 때가 됐다”고 말했다.

동구의 신암동 주민들은 신암육교 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최근 육교 철거를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곧 ‘신암육교 철거 및 횡단보도 설치 주민청원’을 동구에 낼 예정이다. 동구 관계자는 “청원이 접수되면 주민 설문조사 등을 거쳐 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왜 철거 요구하나=1973년 신암육교가 대구에 처음 설치된 이후 지금까지 54개의 육교가 세워졌다. 서구가 철거한 2개를 제외하면 52개가 남아 있다. 육교는 도로를 건너는 시민을 보호하면서 차량 소통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해왔다.

문제는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육교 이용자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이다. 관절과 허리 질환을 앓는 노인이 많아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등 대다수 시민이 육교 아래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바람에 교통사고도 꼬리를 물고 있다.

시민단체의 보행권 확보 운동도 한몫하고 있다. 장애인·노인·임신부·환자 등 교통 약자가 마음 놓고 도로를 건널 수 있도록 육교를 없애라고 요구한다.

대구장애인연대의 서준호(32) 사무국장은 “어린이 안전 등을 위해 꼭 필요한 육교를 제외하곤 철거하는 게 차량보다 사람을 생각하는 교통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육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곳도 있다. 동구는 지난 1일부터 방촌동 강촌육교의 도로 양쪽 인도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를 타고 올라가 육교를 건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넓은 도로에 과속차량이 많아 횡단보도를 설치할 경우 사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공사는 10월 초 마무리될 예정이다.

홍권삼 기자,권동준 인턴기자(경북대 2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