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정의 거꾸로 미술관] '오이 스타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 스위스 리 보험회사 빌딩 the Swiss Re Tower
노먼 포스터 Norman Foster, 2003

네모 반듯한 정육면체 빌딩 틈 사이로, 언제부터인가 도심의 명물로 자리잡기 시작한 '탈(脫) 네모' 건물의 출현이 눈에 띄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녀석도 그중 하나지요. 건물의 기능주의적 면모에서 탈피했다는 점에서는 근대 스타일의 건축물은 아니지만, 저명한 건축 양식을 차용하지 않은 점에서 보면 탈근대 스타일의 건축물에 속하지도 않는 것 같군요. 그냥 우리 편하게 '총알 스타일' '오이 스타일'로 불러봅시다.

어찌 되었건 미술품 못지않게 주거와 사무의 용도로 축조된 건물 역시 도심 속의 '한 볼거리' 역할을 합니다. 실용주의의 결과물이면서 미적 대상으로 간주되는 오늘날 건물은 도심 속에 거대한 조형물입니다. 미술과 건축은 서로 다른 범주로 묶여 취급되지만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발 맞춰 변태과정을 거친다는 점과, 보는 이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는 점에서 같은 예술이지요. 그렇다고 저 건물 안에서 사무를 보는 이들이 하나같이 예술가가 되는 건 아닙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